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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O총회의 의제채택은 어떤 절차를 거쳐 이뤄지나요.
“위안부 문제가 ILO 총회의 최종 의제로 다루어지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관문이 많습니다. 각 나라별로 정부가 어떤 조약을 위반했다는 진정서가 들어오면 ILO 이사회 산하 전문가위원회에서 매년 11월쯤 심의를 거쳐 보고서를 작성해 총회에 보냅니다. 여기 보고서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국제법적으로 권위가 있는 거예요. 위안부 문제는 96년 보고서에 처음 올라가서 97년, 99년, 2001년, 2002년 이렇게 5차례나 올랐어요. 그러면 이걸 근거로 ILO 기준적용위원회가 공식의제로 다룰 사례를 20건 정도 결정하게 되는데 노·사·정이 각각 따로 회의를 거쳐요. ILO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인만큼 노동자그룹의 결정을 우대해주거든요. 그래서 먼저 노동자그룹이 잠정적인 의제를 결정하면 이를 사용자그룹이 수용해 논의를 한 후 노·사·정 3자 회의의 의결절차를 거쳐 총회에서 논의할 정식의제를 최종 결정하게 됩니다. 좀 복잡하죠.”
- 98년부터 ILO회의에 참석했는데 그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1∼2년 전부터 대세가 많이 바뀌었어요. 98년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우리를 지지해주는 나라가 많지 않았어요. 위안부 피해자가 있는 네덜란드 노조가 우리를 지원해주는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은 제3세계의 목소리도 많이 커졌고 위안부문제에 대한 국제적 무드도 조성돼 있어서 우리를 지지하는 국가들이 많아졌어요.”
- ILO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인가요.
“국제자유노련이 가장 큰 노조단체인데 일본이 여기에 많은 돈을 지원하고 있어요. 그 입김 때문에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가 기준적용위원회 노동자회의 안건으로 올라가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일본노조, 사용자단체, 정부가 행동하는건 마치 뱀떼가 움직이는 것 같아요. 작년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노동자그룹 회의 중에 전기불이 나갔어요. 큰 회의장에 있다가 할 수 없이 작은 방에 들어가게 돼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회의를 하게 된거죠. 그러니까 얼굴에 양심이 나타나는 거예요. 거기서 일본 노동자그룹이 말 실수를 했는데 거기에 반발해서 다른 나라 참가자들이 일본에게 로비받은 것을 폭로해버렸어요. 그러자 98조 협약을 지지하던 단체들도 29조 협약을 지지하게 되고 분위기가 완전히 돌아섰죠.”
- 이번 ILO총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의제로 채택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는데.
“ILO 총회에 앞서 일본 노동자대표단이 민주노총을 찾아와서 이번 총회에서 제98조 협약 위반 사례를 밀어달라고 협조요청을 했어요. ILO협약 98조는 사실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자그룹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거든요. 올 봄에 공무원 노조들이 출범한 이후 정부와 공무원노조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으니까요. 민주노총에서는 ‘우리가 98조를 밀어주면 내년에 29조를 반드시 밀어줄 것인가. 노동자그룹뿐 아니라 사용자그룹의 확약까지 받아오면 일본측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일본측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대요. 그냥 아이디어를 낸거죠. 한국노총에서는 원칙을 지켜야한다고 밀고나가고. 그런데 일본 노동자대표단이 사용자그룹의 합의를 받아왔어요.
이번 총회 회의에서 내년에는 29조 위반사례를 다루기로 합의했다는 결정을 내렸으니까 결과적으로 잘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일본 노동자대표단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노조가 포함돼 있는데 여기가 국민기금을 주도하는 곳이거든요. 그러니 우리로서는 믿을 수가 없죠. 언제 또 뒤집어버릴지. 일본 정부도 계속 반발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노·사 그룹이 공식적으로 약속을 했으니까 내년에 노·사·정 회의에서 일본 정부가 반대를 하더라도 정부그룹에서 한 국가만이라도 찬성을 하면 통과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제 신나는거죠.”
- 내년 ILO총회까지 1년 남았는데 어떤 준비를 해야할까요.
“지금 이 문제에 대해 너무들 관심이 없어요. 언론에서도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고. 이번 총회결과도 나올텐데 29조 협약을 내년에 다루기로 했다고 기정사실화해서 못박아버리면 일본에서도 그 기사를 볼텐데 우리 언론 어디에서도 보도하지 않아요. 그러면 일본언론은 이번 총회에서 29조 협약 위반사례가 제외됐다고 쓸거라구요. 우리 정부도 NGO 차원에서 7∼8년을 노력해서 이런 승리를 거두면 격려라도 해주고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제네바에 있는 대사님에게 항의를 했어요.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우리 정부와 국회, 사회단체, 학계 등 각계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합니다. 정대협과 한국노총, 민주노총도 열심히 할겁니다. 지금은 ILO를 믿어봐야죠. ILO는 유엔과는 다르게 정치성이 덜하고 그래도 신의를 지키는 곳이니까 내년에는 꼭 될거라고 믿습니다.”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