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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정 선생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 병원 영안실에는 급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많은 여성계 인사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들은 안타까움과 충격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장례절차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눴고 저마다 고인을 마지막 만났던 자신의 기억들을 꺼내놓았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건강하셨던 이우정 선생의 모습을 떠올리던 조문객들은 “최근 동의대 사건 관련자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결정한 것에 대해 논란이 거세어지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고인을 힘들게 한 것 같다”며 더욱더 안타까워했다.

31일 오전 빈소를 찾은 영부인 이희호 여사는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다가 겨우 조문을 마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조문객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생전의 이우정 선생을 그리워했다.

선생이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지못하고 사랑을 쏟았던 탈북여성들은 장례식장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자유이주민주연합회 조연지 통일준비여성회장은 “이렇게 가실 줄은 몰랐다. 가슴이 아프다”며 “북한에서 온 탈북자들이 얼마나 외롭겠느냐며 몸이 아프신 와중에도 찾아와 우리를 위로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에서 함께 활동한 김정례 전 보사부장관은 “보름 전 만났을 때만 해도 ‘건강관리 잘 하십시오. 참 건강해 보여서 좋습니다’라는 대화를 나눴는데 너무도 큰 충격”이라며 “항상 온유하고 조용하고 침착한 외유내강형”으로 이우정 선생을 표현했다. 또한 “5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우린 노선이 달라져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참여 속에 일한다는 신념만은 같았다. 나는 그분에게 당신같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늘 말했다. 이우정 선생은 정의로운 일에 서슴치 않고 뛰어들었고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 지금 가신 것이 너무 아깝다”고 안타까워했다.

결혼하지 않으셨던 이우정 선생을 22년 이상 모시고 살았던 조카며느리는 “자애가 깊으셨고 늘 남에 대한 배려가 크셨던 분이다. 특히 탈북여성들에 대한 마음이 늘 크셔서 항상 그들을 도와주려 했고 가끔 식사준비를 저에게 부탁하시면서도 항상 미안해 하셨다. 고모님이 쓰러지시던 날 너무 기분좋게 나가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고인이 남긴 유품이라야 책이 대부분인데 아마 제자들이 전시관을 마련하면 그 때 기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낌없이 사회를 위해 자신을 던지며 사신 선생에겐 남겨둔 자손도, 남길 재산도 없이 홀가분한 영면이 있을 뿐인 것이다.

이우정 선생은 진보적 여성운동의 문을 연 여성운동가이자 남북여성교류의 물꼬를 튼 평화운동가였다.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 97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를 창립하는 등 여성운동의 영역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1991년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토론회 남측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92년 9월 민간여성대표단 30여명이 분단 이후 최초로 평양을 방문하는 역사를 이루어냈다. 이후 남과 북, 일본에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실행위원회’라는 상설조직을 구성하기도 했다. 평화여성회 창립 후 사상 처음으로 북한 어린이와 임산부들에게 분유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족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평화교육사업, 평화통일사업, 평화군축사업, 탈북여성지원사업 등을 활발히 전개했다.

이우정 선생은 또 교회여성의 민주화, 인권운동의 대모이기도 했다. 교회여성들에게 평등의식을 심어줘 많은 여성신학자와 교회 사회 내 여성지도자를 배출하는 밑거름을 일궜다.

1992년 제14대 평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족법과 성폭력특별법 개정 등 여성 인권을 위한 제도 마련에도 헌신했다. 이우정 선생은 또 70년대 중반 기생관광 근절운동 당시 외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생관광은 어쩔 수 없다는 명분으로 여성계를 설득하려던 문공부 총무국장에게 “기생관광이 그렇게 애국적인 일이면 당신 딸부터 관광기생 만드시오. 그러면 우리도 반대하지 않겠다”며 일침을 가했던 일로도 지금껏 여성운동계 내에서 회자되고 있다.

각종 시국사건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 수사기관에도 자주 불려다녔고 결국 아낌없이 교수직을 버리기도 했다.

이우정선생은 또 여성신문이 이 땅의 첫 여성언론으로 탄생될 때는 누구보다 기뻐하며 주주로 참여했고 지난 4년간은 여성신문의 고문으로 여성언론의 발전에 큰 관심과 사랑을 쏟기도 했다.

민주화운동, 여성운동의 역사였던 이우정 선생은 미국 기독교 월간지 <크리스쳐니티 앤 크라이시스> 인권상, 한신대 인권상, 일본 아시아 인권상의 여성인권상, 아시아인권기금상,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평화공로상을 수상했다.

박정 희경 기자 chkyu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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