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활동 재개에 날개 달 수 있을까

지난달 초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57)가 1년 8개월 동안의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두 번째 연금해제인 이 사건은 경제위기로 궁지에 몰린 군사정부가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으로 미얀마의 미래에 대한 수지의 막대한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수지는 영국에서 살다가 1988년 병든 모친을 위해 귀국해 즉시 민주화운동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같은 해 그가 이끈 반정부 시위는 사망자 수가 약 만 명에 달할 만큼 심각했다. 군사정부에 대항하는 대담한 연설을 펼치며 그가 내뿜은 정열과 용기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줬으며 흩어졌던 유력한 정치인들이 뭉치는 계기도 됐다.

이에 위협을 느낀 군사정부는 1989년 그를 가택연금시켰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야당 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는 리더가 수감 당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1991년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같은 해 수지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95년 가택연금이 해제된 후 그는 자기 집 앞에서 민주화를 위한 자유토론을 주도했다. 다시 군사정부는 그의 집으로 향하는 도로를 차단하고 전화선을 끊었다. 지지자, 언론과의 접촉도 금지됐다. 지지자들이 감옥으로 끌려가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그에 대한 비판도 일어나게 되었다.

미얀마 군사정부를 고립시키기 위해 수지는 외국경제의 국내투자 중지와 관광사업 불매운동을 호소했으나 별 뚜렷한 반응이 없었다.

이처럼 쌓이는 장애로 인해 민주화 운동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여론을 향해 그는 오히려 “왜 그만 둡니까? 이제야 시작이잖아요?”라고 당당하게 반문할 만큼 민주화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개인 삶의 희생을 요구했다.

수지는 영국인 학자 마이클 애리스 박사와 1972년 국제결혼을 했다. 그가 남편에게 내건 조건은 “조국이 나를 필요로 하면 언제든 봉사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였다. 1988년 이후 수지는 남편과 거의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재입국하지 못하게 될까봐 남편의 장례식 때도 영국으로 가는 대신 미얀마 양곤(Yangon)에서 남편에게 바치는 불교의식을 치렀다.

이번의 가택연금 해제로 인해 수지는 다시 한번 정치적 이상을 펼칠 수 있을지 가늠할 분기점에 놓이게 됐다. 하지만 군사정부가 과연 얼마만큼 자유를 부여할지, 또 1980∼90년대가 정치적 삶의 절정이었는지 아니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서막인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그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임봉숙 말레이시아 통신원/요가교사 bethbsl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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