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달러 호텔
@13-2.jpg
사실 감독으로서의 그의 이름 ‘빔 벤더스’는 이 영화에 와서 가장 확실하게, 가장 독특한 문양으로 아로새겨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묘한, 다양한 방식으로 <베를린 천사의 시>를 모방하고 있는 영화 <밀리언 달러 호텔>은 관객을 (특히 벤더스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영락의 알레고리 그 자체처럼 남루한 몰골로 서 있는, 그러면서 이마에는 아직도 ‘밀리언 달러 호텔’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L.A.의 저 거대한 호텔, 그 안에 기숙하고 있는 한 무리의 ‘백치들’. 베를린의 ‘승리의 여신상’이 아닌 L.A.의 이 호텔 지붕에 내려앉은 천사의 시선은 처음부터 너무 한 방향으로 고정돼 있다.
내면에 일그러진 자화상 하나씩 품고 있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 이 모토에 따라 소위 ‘지체아’ 톰톰의 내면 속에 숨어 든 천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정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가는 길이 너무 뻔하므로, 그 들려줄 메시지가 너무 분명하므로 초반부터 초조하고 불안하다. ‘광기의 역사’는 물론 아직도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상의 비정상성을 들춰내기 위해 혹은 비정상 속에 더 풍부하게, 더 순수하게 깃들여 있을 정상성을 퍼 올리기 위해 이렇듯 ‘비정상적인 기이한 사람들’을 동원시키는 방식은 그것이 여전히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적 경계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문제적이며 정상/비정상 ‘너머’라는 어떤 본질주의적 세계를 구원의 지평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고 상투적이다.
밀라 요보비치, 멜 깁슨, 제레미 데이비스 등 몇몇 등장인물들의 성공적인 연기, 가끔씩 눈을 시리게 할 정도로 환상적인 매혹의 장면들, 군소리가 필요없는 U2의 음악 - 이것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한 셈 일 테지만, 그래도, 그래도 ‘세상의 구원’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또한 기술의 발전 못지 않게 조금씩 발전해야 되는 것 아닐까.
김영옥/한국여성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