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것은 두 남자만이 아니다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를 읽고

한국 남성은 태어나면서 아들이 되고 결혼하면서 남편이 되고 아내의 출산과 동시에 아버지가 되고 자녀가 결혼하면 할아버지가 된다. 한국의 여성은 태어나면서 딸이 되고 결혼하면서 아내가 되고 출산과 동시에 어머니가 되고 자녀가 결혼하면 할머니가 된다. 여성들은 죽을 때까지 딸과 아내와 어머니와 할머니로서의 ‘여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다. 포기하는 순간 사회규범과 엄격한 눈초리들이 그냥 두지 않는다. 그 눈초리를 감당하려는 용기를 가진 여성들은 눈흘김을 당하다 못해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남성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들의 자리를 아내에게 넘기고 남편의 자리는 드라마나 근사한 유명배우에게 넘기고 아버지의 자리는 아내로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에게 넘기고 마침내 할아버지의 자리는 투정으로 넘긴다. 그래서 여성은 딸과 아내와 어머니와 할머니라는 네 명의 여성으로서만 아니라 또 하나의 딸인 며느리와 드라마 중독자와 만능의 어버이와 투정꾼 다루기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안되며 결국 여덟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마르티나 렐린 편, 마음산책)에 나오는 독일여성들에게도 진정한 남편이 없었다. 뱀의 허물과 같이 남편이라는 허울좋은 장식천막은 존재했으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남편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에게 진정 필요한 존재는 독일여성들이 실천에 옮겼던 섹스를 나눌 남성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여성의 감성을 이해하고 여성과 삶을 공유하고 그리고 섹스에 대해 아는 대로 솔직하고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남성이 필요한 것이다.

두 남자가 필요했다는 독일여성들의 경험담은 한국여성과 남성들에게 날카로운 비수와 같은 충고를 던진다. 남편 아닌 애인을 두고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나 점차 양심의 가책을 합리적으로 둔화시켜갔다는 독일여성들은 최선을 다해 가족에게 충실했고 여분의 시간을 합리적으로 활용해 애인과 대화를 나누고 성적 기쁨을 공유했던 것이다.

남성들이여,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을 껴안으면서 느낄 법한 스릴과 기쁨을 아내에게 돌려주자. 그 아내가 새 애인을 만들기 전에. 술과 과시적이고 권위적인 언어를 통한 지배적 방식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하는 악습과 절연하고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와 할아버지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자. 물론 위치의 확보는 거저 이루어지지 않는다. 쥐꼬리보다 굵은 월급을 받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하였듯이 위치의 확보라는 것은 그 위치가 요구하는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때 가능하다.

현인세 jschung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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