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그’들의 공간이다

며칠전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던 중 사람이 많이 탈 무렵 거지가 한 명 탔다. 10대 후반인 듯한 그 거지는 돈을 안주면 줄 때까지 귀찮게 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그 거지가 내가 있던 칸을 지날 때 쯤 내 눈에 어떤 여자가 들어왔다. 진한 화장에 틀어올린 머리, 섹시한 옷을 입은 그녀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오빠, 난데 거지가 돈 안준다고 나한테 욕하구 발로 차고 갔어.”

그러나 내가 더 화가 났던 건 그녀의 양 옆에 앉아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의 존재였다. 소름끼치도록 징그러운 그 시선으로 그녀의 아래위를 훑어 보던 그 시선은 제3자인 나도 너무 불편했던 거였다. 그래, 그 거지는 ‘여자’였기 때문에 욕을 한 거였고 ‘여자’였기 때문에 발로 찰 수 있었던 거지. 게다가 그런 옷을 입었기 때문에 주위에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거야. 남자였다면 아마 싸움이 났거나 큰소리가 한차례 났겠지?

지난 3월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하철 역은 아이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한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그것도 3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아이를 거의 내던지듯 패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냥 구경하고 있었고 깜짝 놀란 나는 지하철 역무원에게 말을 했다. 그랬더니 그 역무원은 정말 의외의 대답을 내게 했다. “그걸 제가 어떻게 합니까?”라고.

가정의 일은 가정의 일로, 개인의 일은 개인의 일로 그렇게 남겨두란 말이지. 힘없는 자는 없는대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순응하고 살란 말이지. 그렇다면 이 나라에 법은 왜 있는 거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 사회에서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대단히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언제든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내가 피해보지 않기 위해서 보기 싫은 광경을 보면서도 참아내야 하

고 남자들의 죽끓듯한 변덕까지 참아줘야 한다.

나는 위의 일로 몇 사람과 논쟁 아닌 논쟁을 한 적이 있다. 번번히 논쟁(사실 논쟁이라 하기도 부끄럽지만)이 벌어질 때마다 뭔가 그 거지에게 이유가 있었을 거라거나 개인적인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것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철없는 여자의 사고’라는, 그런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논쟁을 할 때마다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내 개인의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상대방에 대해 조심할 줄 모르는 그들과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서 나는 엄청난 공포감을 느낀다.

김경인 leafteen@hotmail.com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