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주/위기건축 대표,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

여성에 대한 공간 불평등을 가장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여자화장실이다. 그만큼 그 불평등한 상황이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형 극장이나 공연장에서 짧은 휴식시간이나 공연이 끝난 직후에 여자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전쟁이나 마찬가지이다.

대형 극장에서 어린이 영화를 보고나온 후 딸만 있는 엄마는 화장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를 달래기만 하면 되지만 또는 아들들만 있는 엄마는 억지로 참고 극장을 나서면 되지만 딸과 아들이 있는 엄마는 급한 딸을 달래랴 밖에서 기다리는 아들 걱정에 정신이 없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여자화장실을 늘려달라는 요구를 하기 이전에, 여성에 대한 공간의 배려가 모자람에 한탄하기 이전에 인류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으로서 이제서야 겨우 기초적인 화장실에 대해서 당연한 것을 이루기 위해 항변해야하는 입장이 현재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남성은 아무 곳에서나 노상 방뇨를 할 수 있으며 남자아이들의 소변보는 장면은 온 집안이 즐길 수 있는 장면인데 반해서 여성은 스스로 자신을 감추어야하는 근본적인 입장까지 변화시키기에는 아직 너무 미개한 현재일 뿐이다.

주택 설계 지도를 하다보면 학생들이 서재를 아버지의 공간으로 설정하면서 어머니의 공간으로는 부엌을 제시하는 상황은 이번 학기에도 다시 한번 경험한 현실이다.

화장실 밖의 공간까지 거론하기엔 아직 멀었고 이제 겨우 근본적인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화장실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생명 또는 생리와 관련된 공간 또는 구조물은 평균치로 계획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 있을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기본 교육조차 안되어 있는 기성 실무 집단을 앞으로 교육시켜 나갈 길이 멀기만 하다. 화장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많은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

우선 대걸레를 빠는 싱크대는 대부분 여자화장실 안에 설치되기 마련이다. 청소부는 무조건 여성일 것이라는 전제하에, 남성에 의해서 구축돼 온 남녀유별의 논리조차 깨고 여성 청소부는 남자화장실을 드나들어도 무방한 존재이며 혹시라도 남성 청소부가 걸레를 빨기 위해 여자화장실을 드나들어도 무방한 상황을 만든 것이다. 또한 여자화장실의 대변기 부스 하나는 청소부들의 개인 사물함 또는 청소도구실로 바뀌어 정체는 더 심화된다.

화장실의 불평등을 쉽게 이해하려 하면 지금까지 건축설계는 거의 남성위주의 전문영역이었기 때문에 남성의 화장실 사용 행태와 시간에 비해서 여성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남성이 잘 이해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하찮은 일개 사용자의 행태를 배려하기보다는 자본주 위주 입장에서 설계해온 설계 관습으로 이해하여야할 것이다. 조금만 배려하는 입장에서 사고해보면 여성은 사용하는 시간도 길고 좌변기가 차치하는 면적도 소변기에 비해서 넓은 것은 쉽게 파악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설계 도면들을 파악해보면 건물의 단위규모인 모듈시스템에 맞추어서 남녀화장실이 보기 좋은 대칭형으로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기좋은 대칭형 그림으로, 또는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단순히 쉽게 그려지는 도면 안에서 여성 화장실은 막연히 사용자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전제로 또는 조금 정체되더라도 알아서 참겠지 하는 무책임함으로 타성에 몸을 맡긴 설계자의 산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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