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조/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발전산업 노동자들의 파업이 종료되고 두 달이 지났다. 그런데 현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겪고 있을까. ‘불법파업 가담자’로 낙인찍혔던 이들 앞엔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복귀 직후 파업노동자들은 맘에도 없는 ‘서약서’부터 작성해야 했다. 자신들의 투쟁에 대해 스스로 “불법임을 인정”해야 했고 “태업·준법투쟁·설비점거 등의 행위를 일체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준법투쟁조차도 못 하도록 하는 이 서약은 법에도, 단체협약에도 없는 부당한 강요이자 양심을 짓밟는 행위였다. 그러나 회사간부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서약서 작성을 종용받은 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치욕을 받아들였다.

수모는 서약서 작성에서 끝나지 않았다. 회사측은 파업참가자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기 위해 개별감사를 실시했다. 문제는 감사의 내용.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작성된 ‘문답서’에는 동료에 대한 고발을 종용하는 내용까지 있었다. 형식적으론 ‘자유의사’에 따라 답변할 수 있다지만 “분위기상 고분고분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토로다. 그리고 “가족 중에 가족대책위 활동에 참여한 사람이 있는가” “민주노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징계 결정여부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질문들이 퍼부어졌다. 심지어 파업투표에서의 찬반여부마저도 실토할 것을 요구했다. 비밀투표가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이지만 회사측은 그마저도 개의치 않았다. 이는 파업 참가자들의 양심을 집요하게 파헤침으로써 그들 스스로 자괴감과 패배의식에 빠지도록 하는 고도의 심리적 압박이었다.

‘해고’와 ‘가압류’라는 물리적 고통도 기다리고 있었다. 파업기간을 포함, 3차례에 걸쳐 모두 318명이 해임됐고 6월 현재까지도 징계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해고자는 대부분 노조 간부지만 그 중엔 노조 집행부와는 무관한 회계감사나 선관위원까지도 포함됐다. 5개 발전회사마다 해고의 규모나 대상이 천차만별이었다. 납득할 만한 최소한의 기준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측은 109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무려 62억여 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가압류했다. 이로 인해 복귀 후 노동자들이 받은 첫 봉급은 10만원을 넘지 않았다. 심지어 마이너스 봉급내역서를 받은 조합원도 있었다. 노조측은 가압류 금액에 회사의 신문광고비마저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제조업 파업투쟁이 공장을 점거하고 생산라인을 멈추게 하는 데 반해 발전노동자들은 태업과 유사한 근무거부투쟁을 진행했을 뿐이었다. 전국의 발전소 가운데 어디 하나 가동을 멈춘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금액을 가압류한 것은 노동쟁의사에 유례가 없는 가혹한 보복이다.

이밖에도 노조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하거나 조합원 사이의 회합을 방해하는 등 회사측은 일상적인 조합활동마저도 단속하고 나섰다. 게다가 일부 발전회사는 인권단체들의 현장접근마저 차단하고 있다. 월드컵의 열기가 전국을 뒤덮고 있지만 전국 오지에 흩어져 있는 발전노동자들은 어느 겨울보다도 추운 여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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