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화를 통한 정신적 남성동맹은 군사체계의 기반

제국주의란 가부장제에 기인한다

초월적 사랑 논리는 사기행위다

타이티 섬에 묻혀 여성의 몸을 그린 고갱은 ‘예술을 위한 예술’의 삶을 살았던 근대회화의 창시자인가, 식민지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고 내면화했던 프랑스의 첨병이었는가.

오랜 미술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나체’란 순수한 미의 추구라는 예술적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소재로 자리잡아왔다. 따라서 기존 관점대로라면 재론의 여지없이 당연히 전자의 입장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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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그로 <앉은 누드>

하지만 대답은 간단치 않다. 기존 관점이란 무엇인가. 기존의 미술사가들에게 결여됐던 반제국주의적 역사관, 그리고 성별의 시점을 견지한다면 대답은 180도 달라진다.

지난달 31일 열린 <한일 근·현대 여성과 미술> 심포지엄에서 와카구와 미도리 교수는 이제까지의 예술지상주의적 해석과는 달리 “누드화의 번성에는 시대의 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여성의 신체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누드화는 근대미학의 승리가 아닌 남성성의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며 반남성중심주의적 예술관, 새로운 미학적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수동적 대상으로 존재하는 여성의 누드화가 번성하는 것은 “남성의 욕망과 폭력 앞에 놓인 여성의 신체가 제국주의적 단계에 들어간 국가에서는 타국을 침략해 식민지화하는 남성적인 힘, 군사력의 메타포였기 때문이다”라는 견해를 과감히 피력하며 비정치적이며 미를 위해 바쳐진 것이라고 기술해 온 누드가 실은 지극히 정치적 테마였음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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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망고의 여인>

그의 논리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프랑스 회화의 주요테마가 남성의 지배를 받는 여성의 누드였다는 현상은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식민지 제국의 번성이라는 정치적인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몸은 아름답다”는 많은 남성 미술가들의 애매한 경탄은 단지 모종의 전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서론으로 읽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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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저승사자가 보고있다

일본 역시 1876년 근대국가 출범 이후 식민지 제국주의체제로 돌입하면서 구로다와 후지타 등 프랑스 누드화의 전통을 따르는 일군의 나체화 작가들이 화단에서의 정통성을 획득했다.

흥미로운 것은 “상식적인 회화의 주제인 나체를 공격하는 것은 일본인이 나체를 포르노그 라피로 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적 야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구로다가 사회현실을 폭로하는 프로레타리아 미술화가들이 검거되는 상황 속에서 제국미술원의 원장이 되는 등 국가에 기용되고 극히 비정치적인(?) 누드화가 후지타가 이후 가장 열렬한 전쟁화가로 돌아서는 등 누드화가들이 일제히 전쟁협력체제에 편입돼 들어갔다는 점이다.

와카구와 미도리 교수는 동·서양 제국주의 국가가 유사한 방식을 통해 주요 테마인 누드를 중심으로 전개됐다는 점을 실례를 통해 확인하면서 “국가로서 보자면 화가가 여성의 신체와 에로티시즘에 집중하는 것은 회화로부터 현실비판을 제거하기 위해 유효했다.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공통 관심사이며 거기서 친밀감을 나눈 남성은 정신적인 남성동맹을 결성했다. 그리고 군사체계는 바로 그 남성동맹 위에 구축되는 것으로 그들은 국내의 타자인 여성의 신체를 영유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국외의 타자를 침략, 살육, 강간, 납치했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와카구와 미도리 교수의 열정적인 주제발표가 끝난 후 이인범 연구위원(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예술연구소)은 “우리를 불행에 빠뜨렸던 제국주의의 기원을 오로지 남성중심주의에서 찾는 노력은 지나치게 사태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닌가. 제국주의는 가깝게는 역사적으로 근대 서구 국민국가의 출현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비롯되며 멀게는 인간의 욕망이나 가치론적 인식같은 인간의 숙명적인 존재양식에서 기인한다”는 질의문을 발제했다. 이에 대해 와카구와 미도리 교수는 “제국주의란 숙명이 아니다. 숙명론을 내세운다면 무엇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타국 영토 침략을 통한 강권적 지배인 제국주의는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의 결함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모계 사회가 존재했고 그 당시 전쟁이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로도 증명된다. 제국주의의 폭력이나 지배의 원리는 젠더를 통해 자연시되고 이는 가부장제에 그 근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여성의 나체화에 있어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넘는 희열을 안기는 남녀간 사랑 체험의 예술적 표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숨막히는 제국주의적 현실에 저항하고 그것을 초극시키려는 감동적인 ‘예술’의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가? 예술에 있어 사랑을 통한 상승과 믿음은 폐기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이들 모두를 싸잡아 페미니즘 정치학 교과서의 삽화로 읽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발제에 대해 와카구와 교수는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사랑이 있었는가”라고 반문하고 “첨예한 문제에 대해 남성들이 맹목적 사랑을 규정, 강요하는 것은 남성본위의 사랑으로 미화, 억압을 정당화하려는 위험한 논리”라고 설명하면서 “가사, 양육과 일로 피폐하게 하루하루를 견뎌가던 제 모습을 보며 남편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하겠지요”라고 날카로운 지적을 유머러스하게 덧붙였다. 또한 “모든 불평등을 안은 채 ‘사랑으로 초월하자’는 것은 한·일 관계에 있어서 일본이 아무런 성찰이나 반성, 사과없이 ‘국가를 초월해서 잘 지내자’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사기행위”라고 답변했다.

문이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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