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기대 꼭 보답하겠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소외된 여성들, 성매매 여성들이나 여성가장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 목회를 흔히 특수목회라고 부르지만 저는 오히려 일반목회라고 부르고 싶어요. 일반목회라고 불리는 남성들의 목회야말로 남성적 시각을 가지고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목회지요.”

지난 5월 27일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에서 최초의 여성 성직자로 서품을 받은 민숙희 부제는 자신의 목회관을 짧고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우리사회에 소외된 여성이 너무나 많은데도 남성목회자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바로 그 빈자리에서 민숙희 부제는 성직자로서의 자신의 소명과 책임감을 발견했다.

~26-1.jpg

◀ 지난 5월 27일 서울 주교좌 성당에서 열린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서품식에서 남자 동료들과 함께 성직자 서품을 받고 있는 민숙희, 김기리 부제.(왼쪽에서 두번째부터) <사진·민원기 기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교회에서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를 듣고 나서입니다. 마치 무당에게 ‘뭐 잘 되게 해달라’고 빌 듯이 자신의 복을 비는 기도만 드리는 거예요. 그걸 보고 씁쓸해져서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후 1시간 동안 묵상기도를 드리는데 제 몸에 새로운 기운이 들어왔습니다. 그게 전 성령이 제게 협조자로서 약속을 주신 거라고 믿어요. 그러자 두려운 것이 없어졌어요. 주의 일을 하겠다는데 도와주시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죠.”

사실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에서 여성의 입학을 허용한 것은 1997년으로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여성이 성직자가 될 수 있는 길이 막혀있었던 셈이다. 서구 성공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 성직자들이 나와 활동하고 있고 가까운 일본에서도 오랜 진통 끝에 1998년 여성사제가 탄생한 바 있다. 그러자 대한성공회 여신도들이 중심이 돼 ‘여성성직후원회’가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도 여성성직자가 나올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들이 뒷받침돼 지난해 4월 부산교구에서 대한성공회 첫 여성사제가 탄생했고 대전교구에 이어 서울교구에서도 두명의 여성이 사제후보로서 부제 서품을 받은 것이다.

민숙희 부제와 함께 서품을 받은 또한명의 여성인 김기리 부제는 서울교구 교무국에서 일하며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을 살려 국제교류를 맡고 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싶어요. 연극놀이를 이용한 성서교육이나 목회상담에 관심이 있거든요. 하지만 성공회는 파송제이기 때문에 교구에서 파견하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그곳이 어디든 최선을 다할 겁니다. 여성성직자가 탄생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평신도와 성직자들 가운데 반대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잘해야 그분들 앞에서 할 말이 있을테니까요.”라는 김기리 부제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부담감이 더 크다며 우리나라 성공회에서 여성성직자라는 선례가 없었던 만큼 자신이 좋은 본이 돼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늘 되새긴다.

“현재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에 여학생은 1명밖에 없어요. 앞으로 언제 또 여학생이 들어올지도 모르고. 신학과에는 여학생이 항상 절반 이상인데 신학대학원에는 여학생이 별로 없다는게 이상하죠.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지겠죠. 그동안 속으로만 생각하던 성공회 여신자들도 이제는 성직자라는 구체적인 꿈을 꿀 수 있을테니까요.”

성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성직자를 가장 반대하는 이들이 바로 수녀들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막상 서품을 받았을 때 누구보다 기뻐하고 축하해 준 분들이 수녀님들이었다는 김기리 부제는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실제로 여성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이들은 역시 여성이라고 말한다.

“저희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성직자 서품을 받았어요. 기다리지 않았죠. 하지만 선배들은 10년, 20년을 기다리며 성직 소명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셨어요. 그분들이 힘겹게 싸운 노력의 열매를 저희가 받은 셈입니다. 저희가 첫 여성성직자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저희가 원하는 곳에서 저희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올 후배들을 위해 저희가 또 길을 닦아야지요.”

소속돼 있는 서울교구 내에 여성성직자라는 전례가 없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디딤돌이 될 수도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여성에 대한 금기를 깨고 남성동료들을 변화시키는 이 모든 것들이 이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이 여성성직이라는 드넓은 황무지를 개척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은 바로 우리 여성들의 몫이다.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

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