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통해 신화 읽기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vs 유시진의 <신명기>

두 만화는 모두 단군신화를 비롯한 아시아의 고대신화를 소재로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국의 신화>는 적통(嫡統)의 위대성을 설파하는 영웅신화인데 반해 <신명기>는 적통을 의심하고 넘어뜨리는 반역의 신화다. <천국의 신화>는 아버지들의 혹은 아버지를 부르는 아들들의 영웅담이며 <신명기>는 아버지를 죽이고자 하는 딸의 노래다.

<천국의 신화>에서 환인은 대지모신-여신의 직계자손이다. 환인은 한 사람이 아니며 환인의 유일한 자식이 다시 환인이 되면서 몇 백년의 대를 이어간다. 그러나 언제나 환인은 성스럽고 지혜로운 ‘아버지’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라는 계보가 만들어진다. 이 환인의 혈통은 환웅으로 이어진다. 후천개벽으로 환인과 천인들의 나라가 사라진 후 태자 환웅은 백두산 아래 인간들의 영토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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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명기>에서 환인은 위대한 여신 두르가를 살해하고 모계사회의 신들인 데바들의 땅을 침탈한 후 상제의 자리에 오른다. 이 환인은 피에 굶주린 듯한 호전적인 전사다. 이 곳에서의 환웅은 데바의 여신과 환인 사이의 서자이며 주위 천신족들로부터 천대받는다. <신명기> 1, 2부의 주인공인 타마라는 환웅의 누나로 스스로를 ‘어머니의 딸’로 인식한다. 그녀에게 있어 환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 죽여야 할 한 존재일 뿐이다. 이 상제-아버지와 그와 맞서는 타마라-딸간의 대립이 신명기의 주된 갈등의 축을 이룬다.

왜 같은 단군신화가 이토록 다른 방식으로 재연되는가. 왜 한쪽에서는 정통/혹은 전통에 대한 존중과 면면히 이어지는 고귀한 핏줄로 연결되지만 다른 이야기에서는 무참한 살육과 강탈, 근친살해의 모티브로 가득차게 되는가. 대답은 단순하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 현재의 질서는 존중받아야 할 것이 되나 권력을 앗긴 자에게 현재의 질서는 ‘언젠가 깡그리 쓸어줘야’할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통과 적법성은 끊임없이 의심돼야 한다. 현재의 질서가 태초부터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기억돼야 한다.

두 만화는 모두 기록된 역사를 조금씩 덧칠한다. <천국의 신화>는 적통의 역사를 향해 가려한다. 그를 위해 서자 환웅은 태자가 되며 배달민족은 중국의 진나라보다도 하늘/환인에 더 가까운 민족이 된다. 반면 <신명기>는 변방의 시각을 견지한다. 타마라와 환웅은 혼혈족이 된다. 그리고 여신은 자신의 목숨과 지위를 아들에게 순순히 내어준 것이 아니라 패륜아 아들에게 살해당한 것임을 기억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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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개의 진실이 존재하게 된다. 마치 데바와 천신족들의 전투가 데바에게는 ‘반란’이 되고 천신족에게는 ‘지고신이 천신족들에게 내려준 정당한 땅을 얻기 위한 성전’이 되는 것처럼.

두 진실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는가는 자신을 누구로 인식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당신은 누구이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문홍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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