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고’ 논란을 통해 바라본 신화 해석의 차이와 의미

영화 ‘마고’ 개봉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986년 <부도지>가 출판된 이래로 창세 신화인 마고신화의 존재가 비로소 알려졌다. 그러나 동아시아 상고사에 대한 연구 뿐 아니라 여성주의적인 신화 해석이 부재한 한국의 현실 속에서 마고 연구는 정체현상을 보이며 사그러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고신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 환기는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관심 촉발이 왜곡으로 시작된다면 이는 매우 위험하다.

유교적 질서가 강하게 뿌리박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모성적 창조력을 근간으로 하는 창세 신화, 즉 마고신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세계가 주목하는 놀라운 충격이다. 뿐만 아니라 마고의 여성원칙이 다스렸던 상고대 한국인들의 근원을 찾는 것은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재조명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작업이 된다.

영화 ‘마고’는 바로 이런 모성적 창조력과 창세 신화의 주인공인 ‘여신’의 의미를 탈색시키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또한 마고 여신의 여성성과 성애를 새로운 질서의 힘이 아닌 남성들의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우리 민족의 소중한 창세 신화인 마고신화를 한번 더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남성중심적 사관과 신화 해석의 관례 속에 여성주의적 시각이 부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신화를 해석하는 일이 곧 정치적 권력의 문제임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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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허구일 뿐이다…?

신화해석에 있어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영화가 마고와 한웅의 결합으로 인류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는 점, 또한 마고가 ‘여성’이 아닌 ‘중성의 상태’라고 언급된 점이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시인 장경기 씨(멀티 포엠 아티스트)는 “신화의 가장 큰 본질적 특성은 애매성이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 자체의 모습 또한 변한다. 마고 신화의 경우는 이런 특성에 더해 그 중요한 출처가 되고 있는 <부도지>의 신뢰성이 매우 약하다는 점, 기타 출처들에서는 마고가 서로 다른 형태의 이야기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닌 채 단편적으로만 등장한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그러나 종교여성학자 김황혜숙 씨(현 미국 남가주 클레몬트 종교대학원 종교여성학 전공 박사 과정)는 “마고 신화는 <부도지>와 <한단고기>의 기록을 전제로 하고 다른 동아시아 기록과 서양의 여신학을 기초로 하면 마고 여신은 물론 마고 문명, 마고 사상, 마고 영성 등의 유산을 찾아낼 수 있다. 마고신화는 다른 세계 역사적, 신화적 기록의 시각에서 먼저 연구돼야 하고 거기에 바탕을 두고 상상력을 불어넣는 작업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장경기 씨가 인류의 기원을 ‘한웅과 마고의 결합’으로 그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도지>의 기록에도 배치될 뿐 아니라 마고 처녀생식의 의미성, 즉 다양한 유럽과 인도의 여신들 속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신화적 근간’을 놓치게 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왜 ‘마고여신’인가

장경기 씨는 “<부도지>를 근거로 했을 때 짐세(봄·여름이 가을·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에 마고가 태어났다는 것은 음양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무극의 시기를 의미하므로 중성의 상태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마고를 생물학적 여성으로 파악한다거나 여인으로 상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 만물의 창조주를 여인으로 보는 것은 매우 단편적인 판단”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김황혜숙 씨는 “마고는 선천과 후천이라는 우주적 시간의 중간 시기인 짐세에 나타난 여성인간이자 여신이며 세계가 주목하는 마고 기록의 가치는 마고의 여성중심적 창조와 다스림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마고 신화의 대중적 확산이 중요한 이유를 “세계 전체가 수천년의 가부장제 문명으로 인해 위기에 놓인 현실 속에서 마고신화의 복원이 새로운 윤리와 인간관계를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장경기 씨 역시 “인류를 이끌어온 신화들이 노출시킨 문제와 상처들을 보완하고 치유하며 새 천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신화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고 신화가 갖는 치유의 가능성에 대해 장경기 씨는 “인간들에 의해 일정한 주형의 틀 안에 고정된 신이 아닌 유동적인 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데 반해 김황혜숙 씨는 “지배와 복종이라는 기존의 남성적 가치가 중심이 되는 신화와 달리 마고는 <율려>라는 음악의 조화, 여성적 질서에 의해 세계를 다스렸던 신”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장경기 씨가 문제 제기한 ‘기존에 존재했던 일정한 주형의 틀’을 ‘남성 중심적 가치’로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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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cy SPERO Female Bomb 1996

신화해석, ‘힘 겨루기’의 정치

상징과 은유로 구성된 신화의 허구성은 현실에 기반한다. 무수히 떠도는 이야기 중 어떤 것은 전설로 남고 어떤 것은 신화로 채택된다. 이 채택의 과정에는 다분히 그 사회가 지향하는 체제와 현실의 이데올로기가 개입된다. 그러므로 신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진위 여부에 대한 고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근원적인 지향을 모색하는 작업이 된다.

미국의 철학자 메리 데일리가 지적했듯이 ‘신이 남성이라면 남성이 신이다’라는 공식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남성적인 특성을 신성화하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신화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아 신화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를 내면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따라서 마고를 여신으로 명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원불교 이혜화 교무는 “신화 해석은 땅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모든 욕망이 투영되기 때문에 가장 리얼한 것”이라며 신화해석의 ‘힘 겨루기’에 대해 지적한다. 따라서 신화가 허구라는 것을 기반으로 신화가 갖는 의미를 탈 정치화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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