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김현주/소프트 랜딩을 꿈꾸는 아줌마

자살사이트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늘었을까. 아니면 자살할 만큼 열악한 사회환경 때문에 자살이 늘고 있는 것일까. 카드회사가 카드를 남발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카드빚에 허덕이게 되었을까. 아니면 빚을 지지 않고는 살기 힘든 빈곤층이 늘었기 때문일까.

참 살기 힘든 세상임엔 틀림 없다. 빈부격차는 점점 깊어지고 없는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5월! 가정의 달이란다. 5일 어린이날, 며칠뒤 8일 어버이날, 일주일뒤 15일 스승의 날. 알콩 달콩 행복한 가족 나들이도, 알록달록 소박한 선물도 모두 주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내게는 부담스러운) 가정의 달 5월.

가정의 달이라고 방송에선 ‘버려지는 아이들’이 방송됐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부모가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고 끝내 그들을 다시 찾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가난이 죄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다는 건 카드빚이 느는 것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많아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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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확실한 건 자식을 버린 엄마와 아빠를 대하는 비난의 강도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가출 청소년, 가출 남편은 늘 일정 비율로 있었다. 요즘은 아내와 노인의 가출도 많이 늘었다. 집에서 견디기 힘든 압력과 그 어떤 환경이 가출로 이어지는 것일텐데, 덧붙여서 다들 말못할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 그래서 집을 떠나는 것이겠지.

그런데 이상한 건 같은 가출이라도 청소년과 노인에겐 관대한 시선을 보이지만 자식을 방치하며 내팽개치고 떠나는 아빠와 엄마는 용납이 안되는 게 우리의 감정이다. 특히 아빠의 가출보다 엄마의 가출은 더 큰 강도의 비난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자식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럼 한가지 짚어보자. 그동안 아빠가 자식을 버리는 건 어디선가 많이 본 그림이었다. 본처와 자식을 버리고 딴 살림을 차린다거나 예술 때문에 훌훌 집을 떠나는 모습을. 하지만 우리는 자식을 버리는 엄마를 본적이 드물었고 우리의 가슴은 늘 ‘모성신화’에 빠져 감히 자식을 버리는 엄마를 상상조차 못했다. 하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가난때문이라도 설령 아빠는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엄마는! 모성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본능이라던 그 ‘모성신화’ 규칙에 따르면 희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하던데 이 규칙은 깨지고 있는건가.

가출한 아내를 찾아달라는 남편의 문의 건수는 점점 느는 추세다.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은 잠적한 아내를 찾기 위해 남편이 말하는 아내의 신상은 빈약하기 짝이 없더란다. 아내가 산을 더 좋아하는지 바다를 더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는지, 심지어 처가의 전화번호가 무엇인지 남자들은 아는게 없더란다.

여자들은 달아나고 있다. 결혼이란 계약의 실체를 몸이 깨닫고, 애초 모성신화는 그들의 발목을 잡는 조작된 규칙이라는 걸 마음이 깨닫고, 그 위에 ‘가난’이라는 조력자가 나타나 그들의 가출을 돕고 있다. 피붙이를 버리고 제 살길 찾아 도망가는 매정한 엄마라는 손가락질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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