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현주/'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http://antihoju.jinbo.net

주택공사의 임대아파트 신청인 자격에는 다음과 같이 ‘호주’가 거론되고 있다.

“본인과 배우자를 포함하여 세대원 전원이 최초 입주자 모집공고일 현재부터 입주시까지 무주택인 세대주로서… (단 60세 이상인 직계존속이나 장애인인 직계존속을 부양하고 있는 호주승계 예정자는 세대주가 아니어도 신청가능) ”

국가가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그 자격을 일정한 조건을 갖춘 세대주로 한정했는데 난데없이 ‘호주승계 예정자는 세대주가 아니어도 신청가능하다’고 예외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해 이 예외조항은 친부모를 부양하는 여성가장에 대한 차별이며 특정한 가족 형태를 우대하는 것인데 이에 관해 ‘호주제 폐지’를 염원하는 박송미령씨(60세, 여성)의 얘기를 들어보자.

박송미령씨는 젊은 시절에 남편과 사별한 후 어린 자녀들과 친정어머니를 부양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장성한 자식들의 혼사까지 모두 치뤄낸 미령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자손들에게 의지하지 않는 독립된 삶을 살겠다’는 평소의 소신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명의로 공공임대아파트를 얻어 준비된 노후를 시작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세대주가 아닌 미령씨는 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관계로 ‘예외조항에 해당되는 신청자격자’인 줄 알았으나 그와 그의 어머니는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호주승계 예정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아들이 호주로 되어있기 때문에 미령씨가 따로 세대주로 독립해 주택부금을 다시 들어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한계가 있다.

공공임대주택의 신청자격에 ‘노부모를 모시는 호주승계 예정자’가 선순위 내지는 동순위 자격를 얻는다는 것은 호주 중심의 가족을 우대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호주 중심의 가족이란 부모와 아들부부로 이루어진 가족을 말하는 것이며 호주가 아닌 사람이 가족으로부터 독립해서 사는 경우를 차별한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지금 박송미령씨는 오랜 지병이 악화돼 독립된 삶을 살아보고자 했던 꿈을 접고 투병생활에 전념하는 중이다. 세상의 모든 ‘미령이들’인 ‘딸과 어머니’의 연대를 법이라는 강제를 통해 방해하는 호주제, 딸은 자식이 아니라고 고집스럽게 강요하는 호주제를 폐지해야겠다.

덧글; 이 짧은 글이 호주제 폐지 운동하는 며느리를 자랑스러워 하시는, 몸이 불편하신 나의 시어머니 박송미령 여사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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