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이단 예술가, 장지아

흰 도화지같은 스크린에 차례로 자막들이 뜬다.

I’m sixteen.(난 열 여섯살이예요)

Is there any other world?(내가 모르는 또다른 세상이 있나요)

Please let me know.(알려주세요)

I want to know.(알고 싶어요)

I’d like to know.(정말 알고 싶어요)

이어 남녀의 성행위 장면들이 뜬다. 일반적인 체위부터 고난이도의 체위까지. 오럴섹스, 애널섹스, 69체위 등. 성적인 자극을 주기 위해 만든 건 아니다. 그런 의도에서였다면 “살코기들이 뒤엉켜 있는 장면들”을 넣었을 거다. 그래서 담백한 드로잉으로 처리했다. 소스는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섹스’라고 입력했을 때 나온 결과들.

처음과 같은 내용의 자막이 또다시 뜬다. 2단계 시작.

이번엔 남남녀, 여여남, 남남여여 등 3명 이상의 섹스 장면이 이어진다. 이때쯤 되면 슬슬 당황스럽다. 그런 관객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쾌한 음악에 맞춰 드로잉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된다.

@16-1.jpg

▶장지아는 “꼭 전형적인 사진만 찍어야 돼요?”라며 잰걸음으로 어딘가 향한다. 그러더니 화장실 거울 앞에서 직접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말한다. “꼭 이 사진으로 넣어주세요.”

자막이 다시 뜬다. 3단계다. 어떤 장면이 나올까. 이젠 기대되기까지 한다. 이번엔 1·2단계를 제외한 상상 가능한 나머지 섹스들이 나온다. 그리고 영상은 이런 자막으로 끝을 맺는다.

Can I be happy now?(내가 지금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요)

“왜 하필 열여섯이냐구?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열여섯’이라는 나이는 생애 중 감성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이 충돌하는 가장 적절한 시기라 생각”했다.

비디오아트 상영장 밖은 로비. 로비를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이번 전시장은 보험회사 건물이다. 원래 전시장소는 건물 내에 있는 갤러리였다. 그렇지만 전시 장소를 건물 전체로 넓혔다. 갤러리가 입주해 있는 보험회사란 건물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전시장소가 결정되면 공간분석에 들어간다. 전시공간마다 나름의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작품이라도 전형적인 갤러리에 전시될 때와 다른 장소에 전시될 때는 분명 다르다. 보험회사란 건물의

특성에 걸맞게 작품주제도 ‘보험’으로 정했다.

로비에 자전거를 설치했다. 그 옆엔 “Wonderful Happiness Insurance”라고 쓰인 전광판을 놓았다. 전광판 주위는 무지개와 해로 장식했다. 관객은 직접 자전거를 탄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Wonderful-Happiness-Insurance-무지개-해’ 순서로 불이 켜진다. 마지막 벨을 울리는 관객에게 보험회사가 제공하는 보험에 무료가입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타보면 알겠지만 자전거를 구르면 구를수록 위험은 증가한다. 이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험회사의 상업논리를 단순화한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최대의 불행(사고나 병)이 최대의 행복(보험금)을 가져다 주는 현실. “슬프다.” 제목 는 이런 세상에 대한 냉소다. 관객들도 자전거를 타며 이런 생각을 할까? 보험을 따냈다며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길 바란다.

~16-2.jpg

최대의 불행을 당해야 주어지는 보험회사의 보험금. 이 슬픈 자본의 논리를 장지아는 자신만의 시뮬레이션으로 냉소한다. 점점 페달을 빨리 구를수록 차례로 단어에 불이 들어온다. 최고 속도를 낸 사람은 벨을 울리고 보험에 무료가입된다.

인터뷰 내내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긴 생머리를 만지고 땋고 쓰다듬는다. 아는 사람이 보이면 꼭 인사를 한다. 소개도 시켜준다. 눈은 사방을 향해 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관심이다. 매료시키는 관심거리는 꼭 기억해 둔다. 그랬다가 작품의 주제를 살리는 도구로 이용한다. 인터넷, TV 뉴스, 음악 등이 그것이다. 보험회사 아이템도 “1급 장애를 당해야만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TV 뉴스를 보고서 얻었다. 다쳐도 아주 많이 다쳐야 보험금이 나오는 현실. “역시 한국사회는 살기 불편한 곳”이다.

“예술이란 이런 거야”라며 자기생각을 강요하는 말을 들을 때면 우울해진다. 예술을 한다는 건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한국사회에서 살아내기 위한 일종의 환타지다. “어쩔 수 없이 예술가는 사회를 지켜보는 일종의 관조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는 작업의 좋은 소스”다.

오는 6월엔 젊은 여성 비디오 아티스트들과 공동전시를 갖는다. 그 전시가 끝나면 잠적하고 싶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1기로 입학해 전문사 과정 1학기째를 맞고 있는 지금까지 너무 바쁘게 살아왔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 그런 상태를 즐기고 싶다. 하지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기 싫은 건 절대 못하지만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니까.” 그게 바로 장지아, 스물아홉 이단의 예술가다.

김지은 기자 luna@womennews.co.kr

gabapentin generic for what http://lensbyluca.com/generic/for/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