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직복직 투쟁하는 이영화씨

한성컨트리클럽(CC) 경기보조원 이영화씨는 요즘 2년 만에 다시 필드에 나간다. 2000년 9월부터 시작된 261일간의 원직복직 투쟁, 그후 1년 동안의 징계가 지난달 5일 모두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5일 이후에도 한동안 일을 못하고 업무배치가 끝나는 시간까지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71번, 이씨의 순번인데도 회사측은 다음 경기보조원에게 업무를 준다. 이를 무시한 이씨가 가방을 가지고 필드로 발을 옮기지만 어느새 직원들이 와서 가방을 뺏는다. 그러면 이때부터 한쪽에서 ‘한성관광개발 주식회사는 4월5일 복직 합의사항을 이행하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

한성 CC 투쟁 후 달라진 경기보조원들

손님 반말 줄어들고 출산휴가 확보

노동자로 인정받으려 법개정 추진할 것

복직은 안됐지만 지난달 21일부터는 20, 30여명의 동료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도와줘 일을 하면서 출근투쟁을 할 수 있게 됐다.

한성CC 경기보조원들은 2000년 9월 노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회사측은 단체교섭을 피하다가 급기야 노캐디 시스템을 선언하며 208명을 해고했다. 경기보조원들은 이에 맞서 261일 동안 원직복직 투쟁을 벌였다. 이씨는 “파업기간 임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정규직과 달리 일당으로 사는 경기보조원들이 이렇게 긴 기간동안 투쟁한 건 대단한 일”이라고 말한다.

노조는 투쟁 끝에 지난해 4월 전원 복직되지만 한모, 최모씨는 6월, 이씨는 1년 뒤인 올해 4월 5일에 복직하는 것으로 회사측과 합의했다. 이씨가 경기보조원 노조의 지부장이었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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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부터 출근투쟁을 하고 있는 이영화씨(사진왼쪽)가 일을 하려 하자 회사 직원이 저지하고 있다.

이씨는 마무리 과정에서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원직복직 투쟁 이후 노동조건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우선 인간적인 대우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손님이 반말을 하는건 기본이고 성적인 농담에 대꾸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트집잡아 마스터(경기보조원들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찔렀다. 그러면 회사에서 반성문을 쓰게 한다. 반성문을 두번 쓰면 자동 퇴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불만이 접수되면 마스터실에서 경위를 듣고 ‘손님도 잘 한 것 아니네, 하지만 우리도 잘 하자’는 분위기다.

“당시에는 잔디기생이란 말도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친구들에게 직업을 못 밝혔는데 이제는 주변에서 다 안다.”

산재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2년 전에는 골프공에 맞으면 마스터는 도리어 ‘그 볼에 왜 맞았냐’며 구박하는 데다 쉬는 동안 못 받는 급여와 병원비 생각까지 하면 서러웠다.” 한 경기보조원은 손님이 친 공에 앞니가 모두 빠졌으나 논란 끝에 손님 회사 당사자가 함께 비용을 부담하기로 결론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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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즘은 공에 맞으면 ‘우리도 법 개정이 돼서 산재보험혜택을 받아야 될텐데…’하는 생각부터 한다.

또 예전에는 40, 50대가 나가면 손님들이 “우리 언니는 할머니가 나왔네”라는 말을 할 정도였지만 이제는 나이가 많아도 회사측에서 자를 생각을 못한다. 임신하면 그만둬야 했던 관행도 없어져 최소 3개월 정도의 출산휴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대기실 복지시설을 개선하고 싶어도 이전에는 ‘얘기해서 될까’하는 태도였지만 이제는 ‘조합을 통해 말하면 될 수도 있다’로 바뀌었다.

그러나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상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마스터 재량으로 해고하던 관행은 없어졌지만 비정규직에조차 포함되지 않아 고용은 늘 불안하다. 회사에서 재직증명서, 소득증명서를 안 떼주면 은행대출시 직업 분류가 안돼 있어 신용대출을 받기 힘든 현실은 이들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씨는 전에는 ‘언제 그만두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요즘은 경기보조원 전국조직을 꿈꾼다. 골프장 경기보조원노조는 관악CC, 88CC 등 모두 합쳐도 10곳이 안 된다. 그러나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법 개정 운동을 하려면 전국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처음 조합 만들면서 ‘경기보조원 그만둘 때 퇴직금 받고 나가자’고 얘기했다.” 경기보조원들은 한 직장에 10~15년을 다닌 경우가 많다. 이영화씨 역시 12년 동안 일했지만 지금대로라면 나갈 때 퇴직금은 커녕 관절염, 위궤양, 허리통증 등 지병만 남는다.

이씨는 현재 복직이 안된 상태지만 법률적으로 해고당한 처지도 아니다. 손해배상 청구를 하려 해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가’부터 따져야 한다.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상 해고된 것과 마찬가지지만 앞으로 일에 복귀할 때까지 계속 꼭두새벽부터 출근투쟁을 할 계획이다.

송안 은아 기자se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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