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와 페미니즘의 만남, 라이엇 걸

‘페미니스트가 싹 쓸어버리다 (feminist sweepstakes)’…?

페미니스트의 명쾌한 선언문? 밴드 르 티그르(Le Tigre)의 최근 앨범 제목이다.

르 티그르는‘라이엇 걸 Riot Grrrl’에서 대표 격이던 밴드 비키니 킬(Bikini Kill)의 보컬 캐서린 한나가 새롭게 결성한 밴드이다. 이들은 1999년 셀프타이틀 앨범 <르 티그르(Le Tigre)>를 낸 후 2001년 10월 <페미니스트 스위프스테이크 (Feminist Sweepstakes)>앨범을 선보였다.

이 밴드의 보컬 캐서린 한나가 중심에 서있던‘라이엇 걸’은 90년대 초기에 나타난 페미니스트 펑크 진영의 선동적인 흐름을 일컫는 언더그라운드 운동이다.

라이엇 걸을 설명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페미니즘’과 펑크의‘DIY’(Do It Yourself 네 멋대로 해라) 에토스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드러내는 페미니즘은 부모세대 페미니즘과의 경계를 보여주며 도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즉‘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만을 내뱉거나 ‘진중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여성은 자의식이 있는 독립적인 인격체다”라고 강변하는 대신에 공주 옷을 이상스레 차려입고“그래 난 공주야”라고 내지르거나 자신의 배에 ‘SLUT’(매춘부)라고 쓰고 다닌다. 기존에 퍼부어지던 억압적인 언설, 전형적인 이미지를 차용해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기며 시니컬하게 표현하고 이것은 또 다른 공격의 무기로 전화된다.

@13-1.jpg

그렇다고 해서 전 세대 페미니즘을 부정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배 페미니스트들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알려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르 티그르의 첫 앨범 수록곡인 ‘핫 토픽(hot topic)’에는 그들에게 영향을 준 여성들의 이름이 나열되는데 이중에는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스피박(G. Spivak)의 이름도 언급된다. 이들은 또한 음악가사를 통해 강간, 가정폭력, 레즈비어니즘, 가부장제, 여성파워 등 젠더 이슈에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다음으로 라이엇 걸은 펑크의 DIY 정신, 즉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명제를 적극적으로 수용, 표방했다. ‘잘해야만 음악 할 자격이 있다’는 결벽증적인 당위를 넘어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를 극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모든 여성들이 기타를 들고 나올 수 있도록’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공연이나 사이트를 통해 기타 악보를 공유하거나 연주 방법을 전면적으로 공개하고 시도하도록 함으로써 음악 작업의 신비화 베일을 벗겨낸다.

~13-2.jpg

이들은 ‘음악을 잘한다, 노래를 잘한다’ 라는 기존의 평가가 ‘사기’일뿐 아니라 ‘남성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며 완고한 뮤지션쉽, 엄청나게 정교한 리듬, 빠르고 현란한 기타 연주 등을 거부한다. 따라서 기타 세 코드만을 가지고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곱지 않은, 따라서 귀에 거슬리는 듯한 여성보컬의 목소리로 내지르듯 노래하기도 한다. 유순하고, 과잉감정에 사로잡혀 있고, 사랑에 번민하는 스테레오타입의 여성을 거부하는 파워풀한 표현도구를 ‘소음’안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표방하는 아마추어리즘이 단순히 ‘아무렇게나 나서서 기타를 두들기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기 민망하고 힘든 기분을 갖게 하는 불편한 공연을 ‘페미니즘을 드러내므로 마땅히 지지 받아야 한다’는 간편한 논리로 덮어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연주 못하는 여자들로 구성된 밴드’라는 주류 미디어의 비난이 무색한 것은 밴드 르 티그르의 그 단순한 사운드가 관중들을 완벽한 파티에 빠져들게 만드는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관중은 단지 여성들만이 아니라 페미니즘적인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는, 단지 이 사운드에 중독이 된 사람들까지 포함돼 있다.

@13-3.jpg

초기에 라이엇 걸은 대부분 인디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매하거나 미디어의 인터뷰를 거부했는데 이는 미디어 자체가 남성적이므로 자신들이 왜곡되거나 이용당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라이엇 걸’이라는 용어 자체에도 주류 미디어의 편의에 의해 범주화되고 규정된 부분이 존재한다. 즉 ‘음악 못하는 여자애들’이면 무조건 ‘라이엇 걸’로 밀어넣어 이들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성을 허물어버린 후 결국에는 ‘음악이 아닌 페미니스트들의 구호’일 뿐이라고 폄하하며 폐기처분하기를 종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연주하며 함께 즐긴다. ‘실력 없는 라이엇 걸은 이제 사라졌다’고 말하는 현재까지, 다양한 장르의 역량 있는 여성뮤지션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현재까지 말이다. 끝임없이 평가의 잣대를 기존의 ‘문법’으로 들이대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우리에게는 문법이 없다!”고 소리치면서.

문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