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오면서 집에서 나와서 산 지 이제 4년째이다. 그 중 1년은 기숙사 신세를 졌으니 자취를 한 것은 이제 3년차라고 할 수 있는데, 집안 살림, 가사 노동이 정말 만만치 않은 것임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집안 살림 열심히 하기야 모든 어머니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집은 식구 수가 적어서 집안이 유독 깨끗한 편이다. 할머니가 함께 사셔서 집안 일을 도와주시기 때문에, 어지르는 사람 수보다 치우는 사람 수는 적어도 우리 집은 빨래가 쌓이는 일도,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일도 없었다. 내 눈에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수고가 마냥 쉬워만 보였고 집안 치우는 일이 별 거 아닌 양 생각하고 살았다. 자취를 시작할 때도 닭장 같은 기숙사에서 벗어나 이제 내가 해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먹고 재밌게 살겠지 라는 아주 철없는 생각으로 짐을 꾸렸다.

그러나 환상이 깨지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 바로 어제 빨래 한 것 같은데 어느 새 입을 옷이 하나도 없는 옷장, 먹은 것도 없는데 수북히

쌓인 설거지통, 아침에 쓸고 나갔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먼지와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방안. 그래서 우리 집 인형들은 모두 회색 먼지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 한 번 밥이라도 해먹을라치면 장보고 손질하고 음식하고 두 세 시간은 훌쩍 가버렸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 모두들 당연히 여겨서 일했다고 어디다 자랑할 수도 없지만 가사 노동은 정말 엄청난 시간과 체력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화요금, 통신 요금, 카드 청구서. 달마다 날아오는 청구서는 또 왜 그리도 많은지. 미처 계좌이체를 안 시켜 몇 달이 밀려 경고장이 날아오고 전화가 끊기고 인터넷이 끊겨서야 부랴부랴 은행으로 뛰어가기를 몇 번 반복했다. 이제껏 우리 집 전화와 전기가 안 끊기고 산 것이 신기했고 우리 가족을 ‘무사히’ 살게 해 준 어머니가 존경스러웠다. 가사 노동, 집안 살림은 에너지 뿐 아니라 과학적인 사고와 굉장한 기억력,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한 일이었다.

가사노동을 월급으로 매겨 가치를 다시 생각하자는 이야기들도 나왔었지만 가사 노동은 결코 슬슬 놀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주부들이 집

에서 쓸데없는 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일 없이 지내는 건 엄마가 아니라 다른 가족들이다. 난 이제껏 ‘빈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메이데이, 여성노동을 이야기하면서도 집에 가서는 아무 데나 옷 벗어 놓고 아침에 방도 안 치우고 나오던 빈대의 삶은 이제 청산하고 여성노동의 문제를 자기 생활에서부터 풀어보면 좋겠다.

김이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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