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폰다

제인 폰다는 연령과 사회 변화에 따른 역할 변신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명성을 사업과 시대 요구에 활용해온 의식있는 여배우다. 20대에 섹스 심벌로 출발해 30대엔 월남전 반대 운동가로 ‘하노이 제인’이란 별명을 얻었고 40대엔 에어로빅 비디오 ‘제인 폰다의 워크아웃’ 출시 사업으로 몸매 가꾸기 열풍의 주역이었으며 50대 이후엔 환경과 여성 운동가로 나서 ‘시민 제인’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해엔 여성의 성 정체성과 교육의 상관 관계 연구를 위해 하버드 대학 사상 가장 많은 기금인 1천250만 달러를 내놓아 ‘시민 제인’의 애칭을 확고히 했다.

이런 활동 덕분에 1984년엔 마더 테레사, 마거릿 대처, 낸시 레이건에 이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으로 선정됐고 99년엔 ABC 방송이 선정한 ‘20세기 여성 100인’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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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로서의 제인의 연기 확장과 역할 변신은 아무리 칭찬해도 과하지 않다. 유명 스타인 헨리 폰다의 딸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반항했던 20대에서부터 그녀의 연기는 형편없는 영화도 살려내는 활력소가 되곤했다. DVD로 출시된 1968년 작 <바바렐라 Barbarella>(15세, 파라마운트)가 좋은 예다. 첫 남편이었던 로제 바딤이 만든 황당하고 엉성한 SF물에서 제인은 투명한 비닐로 된 우주복을 입고 섹스 어필로 자신을 알릴 수 밖에 없었던 데뷔 시절을 잘 활용한다.

역시 DVD로만 출시된 알란 J. 파큘라의 1971년 작 <클루트 Klute>(18세, 워너)는 제인 폰다에게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 신경이 불안정한 뉴욕의 콜걸 브리로 분한 제인은 암울하고 폐쇄적인 이 미스테리 스릴러물에서 유일하게 흥분을 느끼게 한다는 평을 들었다. 도날드 서덜랜드의 무표정한 연기 조력으로 더욱 빛을 발한 제인은 현대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한다.

입센 원작의 <인형의 집>, 베트남 귀환병과 그 가족의 문제를 조명한 <귀향>, 메카시 시절에도 공공연하게 공산주의자임을 선언했던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 릴리언 헬만으로 분한 기념비적인 여성 영화 <줄리아>, 핵 문제를 고발한 <차이나 신드롬>, 현대 직장 여성의 애환을 코믹하게 그린 <나인 투 화이브>. 제인이 출연한 영화는 시대적 소명과 무관하지 않았다.

제인이 여배우로서 이룩한 최고의 헌신은 아버지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황금 연못>의 제작, 주연이다. 여성 편력이 심하고 자식에게 냉랭해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던 아버지와의 오랜 불화에 먼저 손을 내밀어 영화를 완성했던 것. 제작사 이름도 대단하다. IPC(인도차이나 평화 캠페인).

옥선희/ 비디오, DVD 칼럼니스트 oksunhee@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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