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쓴 몸 살리기] 내가 너희들의 밥이로다

이유명호/서울여한의사회장, 몸을 살리는 다이어트 자습서<살들에게 말을 걸어봐>저자

밥 한그릇에 쌀이 몇톨?

내가 늘 궁금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밥 한 그릇에 쌀알이 얼마나 들어 있는가 이다. 어디 심심한 사람 없나. 비 오는 날 낮잠 자다가 문득 심심해지걸랑 아니면 매일 삼시세때 먹는 밥이 고마워지거들랑 한번 세어 볼 일이다. 방법은 식은 밥 한 그릇을 넓은 쟁반에 펴놓고 한 알씩 세고 난 뒤 다시 주워먹을 수도 있고 김밥을 말아먹을 수도 있다. 또는 한 그릇의 밥에는 쌀이 얼마나 드는지 ‘가정교과서’를 참고로 하여 생쌀을 세는 수도 있겠다. 다음에 우아사에 비구니들이 모이거든 놀이 삼아 세어 볼까? 맞춰도 상은 없다. 그러나 쌀 한 톨에 들어간 많은 사람들의 공력은 틀림없이 느껴질 것이다.

* 밥 한 그릇 - 푸른 벼 포기로 자랐을 낟알이 칠천오백에서 일만톨이 있어야 한 그릇.

밥만 한 것이 없다

몸 구박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화풀이는 애꿎게도 귀하디 귀한 밥을 ‘찬밥 신세’로 몰아대는 것이다. 우리를 포함해서 세계인 20억이 밥을 먹고 살아간다.

쌀에는 탄수화물을 비롯해 섬유질, 비타민, 미네랄이 많고 탄수화물이 에너지원인 거야 다 아는 사실이다. 이중 섬유질은 칼로리는 없지만 발암물질, 콜레스테롤, 담즙산, 중성지방을 흡수해 몸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하며 장내 세균의 먹이로 분해되는 과정에서는 항암물질까지 만들어 낸다. 제일 중요한 건 밥은 물만 부어 끓이면 되는 순수한 조리과정을 거치고 에너지를 조금만 쓰고도 먹을 수 있는 친환경적 먹거리라는 점이다. 반대로 빵은 밀가루 빻아서 표백하고 배타고 여행시키느라 방부제 듬뿍 치고 빵 만드는 과정에서 온갖 첨가물 다 들어가다 보면 순수함은 간데 없고 모양내느라 포장하느라 배달되느라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는 셈이다.

밥도 성깔이 있다

쌀에 물과 열을 가해 지은 밥은 쌀에 따라 그 성질이 천차만별. 밥이라고 다 같은 밥이 아니다. 일례로 우리 쌀은 낱알이 짧고 통통하며 밥을 지으면 끈기가 있고 윤기가 돌며 덥고 무거운 데 반해 더운 지방인 베트남 쌀(안남미)은 길고 투명하며 끈기가 전혀 없다. 우리가 보기엔 베트남 쌀이 영 이상하고 베트남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 쌀이 별나겠지만 알고 보면 기후에 딱 맞는 기막힌 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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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봄에 심어 한여름의 열기와 가을의 땡볕에 익기 때문에 성질이 따뜻하다. 형제간인 보리는 한겨울 눈밭 속에서 자라나 봄에 수확을 하므로 성질이 냉하다. 그래서 한여름에 더위를 식히려 보리밥을 먹게 된다. 속이 냉한 사람이 찰밥으로 속을 데우고, 위에 열이 많아 더위를 타거나 당뇨인 사람이 보리밥으로 열을 내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살풀이에 좋은 밥

그런데 살풀이를 원하는 우리들은 어떤 밥을 먹는 것이 좋을까?

현미와 보리, 팥, 콩 등의 잡곡을 섞어 먹으면 이상적이다. 쌀의 영양은 껍질에 더 많고 씨눈에 생명의 정수가 다 모여 있다. 그래서 왕겨만 깍아낸 현미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고 난리를 치며 열 번이나 껍질을 깍아내서 영양을 날려버린 흰쌀밥을 먹는다. 그런데 제대로 건강을 챙겨보며 살풀이도 하려면 현미밥과 친해져야 한다. 소화를 더디게 하는 것-위가 뿌듯하고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고 헛배가 불러 배고픔을 덜어주는 것이 바로 목적하는 바다. 찬밥 보리밥은 위의 속열을 식혀주어 입맛을 떨군다. .

위도 운동이 필요하다. 늘 음료수에 부드러운 음식에 씹을 건더기도, 위가 주물럭거릴 필요도 없는 음식만 먹으면 위 근육도 게을러지고 무력해진다. 헬스 가서 운동을 열심히 하듯이 이제부턴 위를 운동시키는 헬스를 하자. 현미밥을 원래 양보다 적게 아껴가며 야금야금 꼭꼭 씹어서 침을 섞어서 넘기며 천천히 밥맛을 음미해 보자. 팥은 몸의 붓기를 빼주고 피부미용에 좋은 잡곡이다. 콩이야 팥이야 섞어서 즐겁게 고맙게 먹어보자.

<‘밥값도 못하는 놈’‘다 된밥에 코 빠뜨렸다’ 이런 말은 지당한 비유지만 ‘너는 나의 밥이다’라는 말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언어 사용이다. 특히 여자를 따서 먹었다는 남자들도 많던데 내가 모자라서 여자까지 잡아먹는 식인풍습이 생겼단 말인가. 부디 농민들 잘 섬기고 농사 잘 지어서 밥맛 나게 잘먹고 잘살아라. 이제부턴 ‘그노무 밥이 웬수’라는 말을 하면 밥 정말 섭섭하다. 그런 자는 굶겨서 확실히 보내버리겠다. -너희들의 밥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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