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부터 계획한 바로 그날이 왔다.

이날은 남편과 아이를 모두 떨궈놓고 우리끼리, 그러니까 딸들끼리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모처럼 우리들을 위한 시간을 갖기로 계획한 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날까지 솥뚜껑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게 모두의 의견이었고, 그래서 식사도 해결되고 방도 있으면서 분위기 있는 카페까지 함께 있는 곳으로 엠티 장소를 정했다.

토요일, 점심을 먹고 난 후 도착한 장소는 서울 외곽의 한적한 통나무집 카페.

오후 4시. 일단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첫 번째 시작한 프로그램은 바로 ‘와글와글 물물교환’ 이었다. 옷을 잘 사는 유일한 비혼인 막내가 먼저 옷가지들을 주욱 내놓았고, 이어 상품권, 괌 호텔 무료 이용권 등이 쏟아져 나왔다. 간단한 게임을 하면서 내놓은 물건들을 하나씩 찜해 가는데, 티셔츠 하나를 놓고 경쟁이 붙기도 하고, 어떤 건 서로 안 갖겠다고 아웅다웅 하면서 분위기가 화끈 달아올랐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꼭 의논을 해야 하는 집안의 문제들에 대해 회의를 했다. 먼저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유연하게 대처하자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딸에서부터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딸까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누구한테든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또 꼭 여건이 된다고 하더라도 대가족을 이루어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가정에서 조부모의 역할이 희미해지고 대가족 구성원 전체가 서로에게 필요충분 조건이 되지 못하는 사회 구조인 이상, 다른 것들을 간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웬만하면 자식들과 합치지 않고 두 분이 따로 살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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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택한 방법은 혹시 당장이라도 누구든 부모님과 합치거나 바로 옆에서 지켜 드려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면 일단 지금 가장 부담이 없는 막내가 그 일을 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경제적인 지원과 함께 틈나는 대로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함께 사는 딸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아이들이 자라고 각자의 여건과 상황이 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적합한 사람이 다시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유연한 대처방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어쨌든 가부장제 식으로 맏이라서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누구도 책임에서 배제될 수 없고, 모든 경우에 모두의 지원과 관심이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의를 순조롭게 마치고 막간을 이용해 ‘즉석 빙고’ 게임을 했다. 한 판에 상금 1만원. “빙고! 빙고!”를 외치면서 즐거움도 공유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밤부터 시작된 이번 엠티의 하일라이트는 바로 ‘her-story’ 시간이었다.

진실게임, 도마타임 이런 걸 연상해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하나, 둘, 셋!” 하면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이야기의 주인공을 결정했다. 막내에 이어, 큰언니, 셋째 언니까지 하고 나니 새벽 4시....

예상은 했었지만 가벼운 얘기에서 시작해서 그 동안 가슴에 쌓인 얘기들을 하다 보니 티격태격 하기도 하고 한 사람 때문에 다같이 울고불고 하기도 했다. 힘겨운 삶 속에서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는 큰언니, 합리적이고 정확하면서 주장이 강한 작은언니, 중용의 미덕을 배우게 해주는 셋째 언니, 끼 있고 속 깊은 막내, 그리고 평범 속에 특별함을 감추고 있는 나…헤헤.

우린 이렇게 모두 제각각이다. 남성중심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우리를 악녀라 부를 것이다. 고집 세고 다루기 힘든 여자들이라면서… 어쩌면 우리도 지난 삼십여년 그런 이유를 대며 서로 미워하고 못마땅해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다채로움 속에서 더 아름답게 어울릴 수 있다는 우리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첫발을 내딛었다.

‘차이’를 없애기보다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이 되더라도 그 위의 음표들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듯 조화롭게 살아가야지…

손창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늘도 김치찌개를 끓이며 철학하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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