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부산대 법대 교수

지난 1월 30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친양자제도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을 때의 일이다. 재혼가정의 사례발표를 하러 나온 한 여성은 자신의 가족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더구나 여러 언론기관이 취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고 절박하면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런 자리에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 분의 가족이 겪고 있는 아픔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 날 이후 마음 한구석에서는 우울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혼 후 부모가 서로 아이를 키우지 않으려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고,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아동들이 부모의 이혼으로 가정을 잃고 보호시설로 가고 있는 형편이다.

재혼을 하는 경우에도 상대방 배우자의 자녀를 원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우리 사회에는 재혼가정에서 상대방 배우자의 자녀를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고 키우는 분들도 있다.

이런 경우 아이들도 자신들을 키워준 아버지를 ‘진짜’ 아빠라고 생각하며 따르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전혀 교류가 없었던 친아버지와의 관계는 단지 법률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이런 경우 친아버지도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새아빠’가 아이를 입양하여 자신의 성을 따르게 한다고 해도 굳이 반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행법에 의하면 이런 경우에도 아이의 성은 바뀔 수가 없다.

양부모와 친부모, 그리고 입양되는 아이까지 모두 원하고 동의하는데도 아이는 양부의 성을 따를 수 없다. 민법상 부계혈통주의, 즉 ‘성불변의 원칙’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커서 학교에 다니게 되면 이 아이는 아빠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특별한 존재’가 되며, 입양아라는 사실이 학교 전체에 알려지게 된다.

입양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는 끊임없이 주위의 편견과 불필요한 호기심에 시달리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 또한 아빠와 같은 성을 쓸 수 없다는 사실에서 아이는 다시 한번 큰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입양아동의 복리도, 입양가정의 행복도 실현될 수 없다.

극단적인 부계혈통주의는 입양된 아동을 불행하게 할 뿐 아니라, 입양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자기 핏줄 아닌 아이’의 입양을 기피하는 풍조가 이처럼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부계혈통주의에 있다.

그 결과 보호필요아동의 상당수는 오늘도 국내에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하고 해외입양의 길을 떠나고 있다. 정부에서 입양통계를 내기 시작한 1958년 이후만 보더라도 해외로 입양된 아동의 수는 20만명을 훨씬 넘는다.

이 모든 아이들은 서양인 양부모의 성을 따라 서양식 성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소위 ‘유림’들은 이런 현실을 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지? 소위 ‘한국씨족총연합회’ 부총재라는 구상진씨는 한 방송국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친양자제도를 반대하면서, “고아는 혈족들에게 양육을 주선하는 것이 현실적 해결책이며,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런 식으로 해외입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씨족연합회라는 데서 얼마나 많은 ‘혈족의 아이’들을 입양하여 키우는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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