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부터 시작한 소송이 벌써 만 2년이 넘었네요. 2심에서도 패소했지만, 끝까지 가봐야죠. 이참에 변호사도 바꿨는데, 여성 변호사님이예요. 우리 생각을 잘 이해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다른 여성 변호사님들도 돕겠다고 나서서 힘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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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성주 이씨 효자선녀파 이명자씨는 종중 재산과 관련한 소송을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강고한 차별구조를 처음으로 절감했다고 전한다. 소송을 제기할 때만해도 이 문제가 딸들의 인권과 연결된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개인적 차원이 아닌 전체 여성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단다.

물론 힘든 일도 많았다. 1심 때만해도 동참하는 종중 여성들은 80명에 달했지만 2심에서는 절반으로 줄었다. 현재는 10명만이 동참할 뿐이다. 한 부모 밑에서 자란 남자형제들로부터 “돈 때문에 그런다”는 비난을 받을 때는 억울해서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내 딸들이 살 세상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작년에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사하면서 놔뒀던 집까지 팔았어요. 그것 때문에 남편과 많이 싸웠죠. 그걸 만회하기 위해 지금 강남에서 네 사람이 동업으로 공인중개사무소를 차렸는데, 우리 사촌 오빠가 그 사무소에 왔더라구요. 다른 직원이 상대했는데, 여기저기 집이며 빌딩을 사러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이명자씨가 속한 성주이씨 효자손녀파는 용인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매각한 종중 땅으로 20세 이상 성인 남성들은 1인당 12억씩 받아 챙겼다. 이것도 총 629억원 가운데 중도금 300억원만을 나눈 금액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돌아갈 돈이 남아 있다. 여자 형제들에 대해서는 한푼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은 다른 종중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집이 아버지가 면장까지 지내시면서 그래도 용인일대에서 꽤 잘사는 집이었죠. 오빠

가 저보다 16살 많은데, 제 나이 아홉 살에 아버지 돌아가신 후 오빠가 사업한다며 그 재산 다 날렸어요. 그때 받은 충격으로 어머니도 홧병으로 돌아가셨죠. 집안 재산 다 탕진하고 여동생들이 학교다니며 그렇게 고생했을 때 한번도 도와주지 않은 오빠가 이제 와서는 ‘다 자기 복’이라며 나 몰라라 하죠. 제 동생이 지금 망우리에서 사글세방에 사는데, 몸이 아파 병원비도 많이 들어가는데, 형제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워요.”

성주 이씨 효자선녀파는 지난 해 종중재산과 관련한 것 뿐 아니라 자신들 몫을 늘리려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남자형제를 실종 신고한 종중 남자들을 사문서위조, 사기 등으로 고소하기도 했지만, 무혐의 처리됐다고 울분을 토한다.

이명자씨는 “우리는 정말 돈 몇푼 구걸하는 게 아닙니다. 딸들도 후손이니 조상도 같이 모시자는 거죠. 지금까지는 가부장적인 관습 때문에 그렇게 못했다면 이제라도 바꾸면 되잖아요. 보릿고개를 넘기면서도 지켜온 땅을 판 돈으로 남자형제들이 그렇게 흥청망청 쓰는 걸 보면 조상님들이 뭐라고 하실까요”라고 반문한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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