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필요한 물건을 장사하는 사람끼리 싸게 도매가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장사꾼들은 물건 도소매 가격을 품목에 상관없이 대충은 알기에 파는 사람들도 이익을 많이 남기진 않는다.

우리 상가는 남대문에서 꽤 유명하고 오래된 상가로 10층 건물에 한 층마다 150여 개의 점포가 있으니 지하 1층까지 대충 따져 봐도 1600여 개의 점포 수가 나온다. 지하 1층은 아동복. 1, 2, 3 층은 숙녀복. 4층은 액세사리. 5층은 신발 등 모두 골고루 갖춰져 있다.

그러니 필요한 물건이 전자 제품과 부식만 아니라면 모두 이 건물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정말 좋은 일이다.

얼마 전엔 이곳에서 일하는 특권을 톡톡히 누렸다. 열심히 물건을 정리하다 바지 가랑이가 터진 것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옆 가게 언니가 말해 주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왕 쪽(?)을 당할 뻔했음이다. 겉옷을 걸치고 부랴부랴 3층으로 뛰어내려가 바지 가격을 물었더니 3만원이란다. 나도 이 건물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좀 싸게 도매가로 달라고 하니 바로 가격이 내린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소비자들도 약은 정보통들이라 시장에 와서 도매상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싸게 사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장사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어디어디서 옷가게를 한다, 액세서리 장사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물건을 도매가로 사려고 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는 것이다.

좀더 싸게 물건을 구입하려는 마음은

백번 이해한다. 그러나 장사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헤아려 줬으면…

물건을 해 보고 다른 집과 비교해 싸게 잘해주면 나중에 와서 많은 양의 도매를 한다고 하면 정말 할 말이 없기 때문에 알면서도 속고 울며 겨자 먹기로 도매가로 물건을 줄 수밖에 없다. 목동에서 장사한다는 어떤 아줌마는 목걸이 하나를 사면서 도매상이니 싸게 달라고 조르는 통에 그냥 도매가로 준 적도 있고 옷가게를 한다는 어떤 아줌마도 액세사리가 디스 플레이 용으로 조금만 필요하다고 해 싸게 준 경우도 있다. 아마도 내가 다른 점포에서 물건 살 때 써먹던 수법을 그대로 내가 당하는 것 같다.

앞집 아줌마는 얼마 전에 매일 오는 단골 손님에게 사기를 당하셨다. 몇 번 왔을 땐 일반 소비자처럼 조금씩 물건을 사 갔고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긴 후 무슨 큰 대형 마트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라며 소개를 하더란다.

그러면서 물건을 20만원 정도 해 갔는데, 그중 10만원만 돈을 주고 나머지는 나중에 물건 하러 와서 갚겠다며 갔단다. 전화번호를 남기고 가길래 믿고 보냈는데 나중에 전화를 걸어 보니 없는 번호로 나오고 그 후론 다신 이 상가에 나타나지 않는다.

앞집 아줌마는 가끔 그 아줌마 욕을 하시며 속상해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도대체 얼마나 어려우면 그 적은 돈을 떼먹고, 또 얼마나 부자가 되려고 도매상도 아니면서 도매상 행세를 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물론 아줌마들이 좀더 싸게 물건을 구입하려는 마음은 백 번 이해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헤아려 줬으면 좋겠다. 난 아직까지 외상으로 물건을 줬다가 못 받은 적은 없지만 이곳 상인들의 얘기를 듣자니 그런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도매상이라며 오는 손님들을 의심하고 싶진 않지만 이제는 좀더 주의해서 물건을 팔아야 할 것 같다.

박진미/세상 모든 부부가 평등부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아줌마 장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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