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열매> 전

천지창조와 금단의 열매, 뱀의 유혹 그리고 이브의 타락 이야기는 서양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오래된 믿음이다. 하지만 세속화된 포스트모더니즘의 끝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를 다루기 꺼려한다. 이런 사조를 깨고 젊은 작가 9명이 ‘예술과 종교와의 대화’를 기치로 <금단의 열매>전을 열어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이윰씨는 “종교적 독선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소통하기 위해 서로 다른 관점(기독교인과 타종교인 혹은 무종교인)을 가진 작가들이 공동작업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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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포스터.

전시회는 모두 3개의 방으로 이뤄졌는데 첫번째 전시실 ‘Where are you?’는 좁고 긴 스크린 통로를 거쳐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통로를 걸어가는 사람을 덮칠 듯 넘실거리는 불꽃 영상은 신(God) 혹은 영혼(spirit)을 뜻하는 듯하다. 통로 끝 탁 트인 공간 안에는 파괴된 물질세계와 영상세계가 분리되어 들어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 두번째 전시실은 ‘지식의 나무’. 사면의 하얀 색과 강렬한 빛이 합쳐져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멀 듯 정신이 아련해진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극단의 빛(light)이 사실은 얼마나 가벼운(light) 것이며 지식과 계몽(enlight)이란 게 실제로는 앞으로 나아갈수록 방향을 잃게 만든다는 반성을 암시해준다.

마지막 방 ‘생명의 나무’에 들어섰다. 환희인지 부끄러움인지, 젖은 눈을 한 채 시선을 맞추고 있는 사진 속 인물들이 관객을 에워싼다. 숨을 불어내는 듯한 미세한 호흡과 웅얼거림이 스피커를 통해 귓속에 스며들면 “I am in you, You are in me” 모니터 속의 글귀가 마치 관객의 가슴속에 파고들어야겠다는 듯 반복 또 반복된다.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들은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을까? 신학을 향해 어떤 대화를 건넸을까? 아쉽게도 전시물에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보이지 않는다. 공동작업을 한 작가들끼리 신학적 내러티브를 두고 어떤 소통을 나누었는지, 각각의 작가들에게 종교의 영역 그리고 금단의 열매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읽을 수 없다. 특히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전시회에 내재된 ‘이원론’과 ‘인간 중심주의’는 문제적이다.

“이번 전시는 예술과 종교와의 대화를 위해 이제 막 문을 두드리는 단계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시작했으니까요.” 관객들의 비판이 오히려 즐겁다는 이윰씨는 이번 전시회를 보완해 해외에도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예술과 종교와의 대화가 앞으로 어떻게 성숙해 갈지 이들의 행보를 지켜봐야겠다.

4월 7일까지 성곡미술관 본관. 문의 02)737-7605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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