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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18년여의 독재기간 동안 31개월에 걸친 3번의 계엄선포와 5개월에 걸친 3번의 위수령과 69개월간 지속된 비상조치를 선포하는 등 철저한 일방통행의 폭압정치를 펼쳤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그의 아우임을 자처하는 전두환, 노태우가 다시 총칼로 정권을 잡아 12년을 집권함으로써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역사적 비판을 받을 기회를 모면한 억세게 운수 좋은 사나이이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이렇게 암울한 노래를 한숨쉬며 숨어서 부를 수밖에 없었던 시절, 특별검사는커녕 시민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이 터럭만큼도 존재할 수 없었던 시절, 중앙정보부 직원이 신문사의 데스크에 앉아 검열을 하던 시절, “떡을 만지다 보면 떡고물이 손에 묻을 수도 있다”고 말했던 박정희의 비서 이후락은 손가락에 묻은 ‘떡고물’만으로도 지금까지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다. 미군납, 외국기업, 국내기업 등을 통해 상당한 커미션을 챙긴 박정희는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밝혀진 대로 ‘상당한 떡’을 스위스 비밀은행에 예치해 두었다고 한다.

자기 행적을 비판받을 기회를 모면했던 억세게 운수 좋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권에 도전할 뜻이 있으며 또한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찍어줄 용의가 있다고 말하는 유권자도 있는 모양이다. 여성의 의회진출 비율이 스웨덴이 42.7%, 북한이 20.1%라는 데 수년째 3∼5%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정치의 참을 수 없는 후진성과 그러한 성차별 현실에서 희생당하는 여성의 수를 생각하면 “치마만 둘렀으면 되었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는가.

그러나 나는 먼저 그에게 묻고 싶다. 그가 박정희 청문회에서 모든 의혹을 명백히 밝혀 아버지의 비자금이 어디에 얼마나 있으며 그와는 전혀 상관없음을 밝힐 수 있는지, 파쇼에 길들여져 아버지 이름을 연호하는 지역에 한 발도 들여놓지 않고 전국적으로 표를 얻을 자신이 있는지 말이다.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혼자 기리는 것은 내 알 바가 아니고.

<고은광순/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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