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트남 수교 10주년 맞아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출간

베트남은 우리가 입에 올리기 불편한 주제인가?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는 우리의 역사는 베트남에서 무너졌다. 그래서일까. 한·베트남 수교 10주년을 맞았지만 언론은 베트남에 관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간혹 언급되는 내용이라야 ‘베트남에 부는 한국 드라마 열풍’정도일 뿐이다. 한·중 수교 10주년에 관한 특집물은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말이다. 이런 침묵 가운데서도 다행히 베트남에 관심을 갖고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다리 역할을 자처한 사람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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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 강제숙, 김현아 두 명으로 시작된 작은 모임이지만 이들이 그동안 해 낸 역할은 매우 크다. 이들이 베트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주 우연이었다. 1998년 ‘나와 우리’가 문을 열던 그 해, 일본의 피스보트 초청으로 베트남을 찾은 이들은 그곳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됐다. 그 참혹함 때문에 베트남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이들은 고통스럽지만 진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99년부터 해마다 베트남을 찾았고 돌아와서는 답사보고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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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령비에 참배하는 답사팀.

‘나와 우리’의 낮지만 꾸준한 목소리는 점점 사회로 퍼져나갔고 이들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었다. 그리고 최근 김현아씨는 지난 3년간의 과정을 기록한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책갈피)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베트남전의 현장을 발로 누비면서 만난 현지 생존자와 참전군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치들을 이해할 수 없어. 모두가 얼이 빠진 게야.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나라의 드라마를 좋다고 보고 앉아서 희희낙락하다니. 한국사람만 보면 심장이 떨려.”(58쪽) 당시 한국군에 의해 마을 주민 대다수가 목숨을 잃은 붕따우 마을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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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이들의 이름 앞에 서 있는 베트남 여성. <하노이 여성박물관>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이 지나간 베트남 시골마을들에는 이런 구절이 적힌 ‘증오비’가 여전히 세워져 있다(1980년 이후에는 위령비로 이름을 바꿈). 베트남인들에게 전쟁 중의 일은 전쟁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 전쟁은 그들의 현재의 삶에 몸의 상처로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었고 다음 세대에까지 가난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인들은 ‘과거를 닫고 미래를 보자’고 손을 내민다. 물론 과거를 덮어두자는 말은 아니다. 그들에게 베트남전은 ‘미국의 침략에 대한 독립전쟁’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졌고, 그 전쟁에서 그들은 승리했다. 승리자로서의 자부심과 관용 때문일까. 베트남인들은 한국군을 ‘미국의 용병’으로, 전쟁의 피해자로 정리하고 있다. 비록 마음 한켠에는 증오감이 남아 있을지라도.

김현아씨는 이 책에서 베트남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베트남과 친구되기’를 제안한다. 베트남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시민과 함께 가는 답사’로 참전군인들과 그의 가족들을 동행했다. 베트남인들과의 만남은 참전군인들에게는 커다란 ‘치유의 경험’이었다.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부분에 대한 기억들이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역이었죠. 위령비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들이 왔다. 용서해 달라....예슬이(아들)에게 할머니를 안아드리라고 한 건 아버지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216쪽) 그들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말과 감정을 쏟아냄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와 우리’는 오는 6월 29일 ‘한국베트남평화문화제’(가제)를 계획하고 있다. 베트남인과 한국인이 함께 과거를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아시아에 평화를 만드는 기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인들의 손으로 베트남에 ‘평화역사관’을 짓는 일도 올해 안에 꼭 성사시키고자 한

다.

“다시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며 문명금 할머니께서 내주신 일본군 위안부 생활지원금 4,300만원과 이제는 고인이 된 김옥주 할머니가 기탁한 2,100만원을 종자돈으로 베트남에 세워질 평화역사관은 ‘전쟁의 고통과 슬픔’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교육현장으로서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평화를 가져올 초석이 될 것이다.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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