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제시에만 머문 보육종합대책에 비판 고조

공보육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 것인가.

‘젊은 맞벌이 부부의 육아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보육종합대책이 ‘공공성 확보를 위한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한국보육교사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영유아보육학회 등 관련 단체 및 여성단체들은 “언제까지 정책 방향만 제시해 놓고 알맹이는 제외할 것이냐”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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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보건복지부, 노동부, 여성부가 합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보육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사진·민원기 기자>

보육종합대책을 비판하고 나선 단체들은 정부의 보육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공허한 구호성 정책보다 구체적인 예산확보 방안의 조속한 시행 등 당장 실천 가능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다음 몇가지로 집약된다.

▲정부 예산 대폭 늘려라:이번 정부안에 대부분 예산 배정 계획이 없는 것에 대해 가장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는 올해 영아, 장애아 및 시간연장형 보육시설의 인건비 추가 소요분만 지원하고 지방비 부담을 감안해 조기 착수가 어려운 보육시설 신축, 증·개축 등의 사업은 내년부터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내년부터 보육사업 예산을 대폭 증액해 연차적으로 계속 투자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관련 부처의 한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작업이 어떻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국고 지원이 늘어나도 지방비가 얼마나 확보되느냐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답해 정부 스스로 실효성에 확신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5년부터 97년까지 시행한 보건복지부의 3개년 보육사업이 별다른 성과없이 끝난 것을 두고 이미 정부는 신뢰를 잃은 상태이다. 당시 국민연금기금에서 민간보육시설에 장기 저리로 융자를 해주었지만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등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어 보육시설이 경매에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

즉 공급에만 치우친 정책이 양적 확대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질적인 부분을 충족하지 못해 수요자의 발길을 멈춘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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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보육모제도 과연 효과적일까: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다. 한국보육교사회 이윤경 대표는 “베이비시터를 제도안으로 끌어들인 꼴”이라고 단언하면서 “한해 배출되는 보육교사자격취득자 수가 근무자보다 많은 상황에서 새로운 가정보육모를 양성하겠다는 것에 대해 그 실효성과 질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보육교사의 과잉공급과 처우개선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부분이다. 현재 전국의 보육교사는 4만4천여명. 한해 배출되는 보육교사 수는 5만3천여명이다. 이들은 저임금과 4대 보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고 결국 보육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1년 과정의 보육교사양성원도 자격 기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 가정보육모제도까지 도입할 경우 인력낭비, 예산낭비를 가져올 것이라는 비판을 가중시키고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전문직 여성은 “그동안 자격증이 없어 가정보육이 안됐던 것도 아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서 아이를 맡고 있는 현실을 국가는 모르는 모양”이라고 꼬집으면서 “얼마나 믿고 맡길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정보육모제도 도입보다 기존의 보육교사에 대한 재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윤경 대표는 “자격을 취득하더라도 3년간 현장경험을 쌓은 후 실무에 투입되도록 하고 아동의 연령별로 특성화된 재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표갑수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1년제 보육교사 양성과정을 폐지하고 이를 보수교육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따라서 정부는 기존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을 비롯해 재교육 과정 마련 및 재교육시 대체교사 확보 방안이라는 과제도 함께 안은 셈이다.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안은 없나:이번 정부안을 보면 공보육을 느낄 수 있는 요소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정부가 내놓은 영아전담시설 기준 완화, 영아보육전담 가정보육모 추진, 시장연장형 특수보육시설, 저소득층 지원대상 조정, 시설에 대한 평가인증제 등을 보면 공보육이 아닌 사보육의 느낌이 강하다는 얘기다.

현재 공공부문보다 민간보육시설 의존율은 80∼90%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보육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교육프로그램이 우수한 국공립시설 이용률은 94%인 반면 직장이나 가정, 민간보육시설 이용률은 81.6%이다.

주변에 보육시설이 있어도 보육서비스의 질에 대한 부모의 신뢰가 부족하고 특히 0∼2세 영아의 보육시설 이용율은 13.1%로 저조하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보육시설이 대부분인데도 정부청사 어린이집이나 삼성이 운영하는 보육시설은 신청자가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양질의 국공립보육시설의 필요성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보육료 부담은 여전하다:특히 민간보육료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발표에 대해 결국 정부는 돈 한푼 안 쓰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여성연합은 “국공립시설이 없어 민간보육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가정의 경우에는 비싼 보육료를 내고 다니든 말든 정부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반박했다.

“보육료의 민간 자율화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한 표갑수 교수는 “보육료의 부모 분담율이 73%인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사교육 국가다. 이젠 보육료 수요자 부담 원칙에서 국가 분담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참여연대, 한국보육교사회 등 시민·여성단체는 지난 6일 보육의 공공성 확대와 보육료 자율화 저지를 위한 여성·시민단체 공동기자회견 및 공보육 확대 촉구 시민캠페인을 전개한 자리에서 “정부 방침대로 보육료를 자율화할 경우 개별 가정의 부담은 한없이 가중될 것이고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보육시설을 이용하게 되는 불평등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윤경 대표는 “가정보육모에게 별다른 인센티브가 없다면 결국 보육료가 높게 책정되는 결과를 낳아 예전의 오류를 재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보육료 소득공제 한도를 확대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두 아이를 둔 전문직 여성은 “기본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소득공제로 보육료 부담이 경감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며 “차라리 각 가정의 특성에 맞는 곳에 보육료를 지불하면 이에 대한 세금공제를 해주는 방향으로 현실적이고 탄력적인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현재 교육비 공제는 유치원, 영유아, 취학 전 아동의 경우 1인당 100만원 한도이다. 그러나 영유아보육법에 의한 보육시설을 이용할 경우에만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고, 영유아에 대한 자녀양육비 공제와 보육비 공제는 중복 공제가 안된다.

또 보육의 혜택을 누려야 할 초등학생의 경우 학교수업료만 공제되고 사설학원 수강료는 공제받지 못한다. 보육시설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방과후 보육 대상 초등학생들이 대안으로 이용하는 사설학원 비용도 넓은 의미에서는 보육료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세금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평가인증제, 채찍 아닌 당근으로:보육현장의 관리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보육시설에 대한 평가인증제를 도입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그동안 보육 관련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제기해온 의견을 수용한다는 점에서는 환영을 받고 있다.

평가인증제의 구체적인 방안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평가인증제가 제재 수단으로만 사용된다면 영세한 보육시설이나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보육의 경우 정부의 관리에서 벗어나 있거나 아예 문을 닫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보육 관련 전문가들이 제안해온 보육료 차등지원이나 보육시설 지원의 차등화 방안이 실효를 거두도록 하기 위한 기준이 될 수 있는 평가인증제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부처별 통합 조정이 문제다:앞으로 복지정책의 주관부처는 보건복지부, 여성부, 노동부, 행정자치부,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등으로 업무 분담을 할 계획이다. 현재로선 구체적 업무 분담을 위한 논의를 조만간 시작하겠다는 답변만 들려줄 뿐이었다. 관련 부처는 아니지만 농림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성농업인지원센터도 보육서비스를 포함하고 있어 부처별로 겉돌고 있는 보육업무를 통합 조정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작년 12월과 올 1월 각각 복지부와 여성부가 보육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 양측 부처의 신경전을 그대로 노출했고 보육수요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이번 정부안에 대해 여성부는 어떠한 비판없이 그대로 수용해도 되느냐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 여성부의 한 관계자는 “왜 이견이 없었겠냐”며 “지금 와서 문제제기를 다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공성에는 많이 미흡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예산 부처와 이 정도에서 타협을 본 것이다. 앞으로 공공성 확보에 중요성을 두고 계속 얘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을 비롯해 경제부총리, 보건복지부와 여성부, 노동부의 합동 기자회견 등 일련의 정부 발표에 따라 보육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높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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