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순덕 할머니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 거주하는 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이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10시에는 서울로 향한다. 도착하면 11시 30분경. 정대협 사람들과 수요시위를 시작할 채비를 차린다.

나눔의집에 찾아갔을 때 김 할머니는 통원치료를 막 마치고 지친 다리를 쉬고 계셨다.

“얼마 전 미국에 갔는데 쌍둥이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 어찌나 놀랬는지 먹지도 못하고 허리가 더 나빠졌어. 수요일에 병원에 치료받으러 오라고 하는데 데모를 빠질 수 없어서 예약도 물렀어. 내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데모해야지.”

~3-2.jpg

김순덕 할머니는 수요시위 출석률이 가장 높다. 골다공증과 요추가 무너져내려 안 아픈 구석이 없지만 “일본 정부가 전후 50년이 지난 현재에도 범죄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할머니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단다.

“날이 춥다고, 덥다고 젊은 친구들이 걱정하는데 나는 열일곱에 끌려가 당한 원통함을 생각하면 추운지 더운지도 몰라. 아직도 밤마다 그때 일이 꿈에 나타나는데,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증언하는데 왜 나 몰라라 하는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야.”

김 할머니는 “얼마전 친일파 명단을 발표했는데 친일파는 명단이라도 나왔지. 정신대로 끌려간 사람들 명단이라도 나왔으면, 그래서 당한 걸 알기라도 했으면 덜 원통하겠다”며 가슴을 친다.

김 할머니는 수요시위에 참여하면서 자신도 많이 배우게 됐다고 전한다. 또 시위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 이후 나눔의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위안을 얻는다고.

“지금은 저 세상에 간 강덕경 할머니랑 처음 데모할 때만 해도 잘 모르기도 했고 이렇게 오래까지 할 줄 몰랐지. 우리 정신대 할머니들은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주눅이 들어 할 말도 잘 못하고 살았어. 하지만 우리가 끌려간 게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지만 그것도 우리 책임이 아니잖아. 이건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야.”

일본 정부에게 항의하는 시위를 계속하면서 같은 민족인 우리 경찰과 몸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는 김 할머니는 “나라가 힘이 없어 그때나 지금이나 당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내 나이 벌써 여든이 넘었어.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내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일본 정부가 우리 요구를 들을 때까지 계속해야지.”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