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잣대, 노동위 적극적 변론, 법원 공정한 판결 필요
한화프라자 CC 경기보조원들은 2000년 하반기에 40세 정년 철회 등을 요구하며 회사측에 교섭을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측이 이들을 노동자로 볼 수 없다며 교섭에 응하지 않자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서를 제출해 ‘교섭이 가능한 근로자’라는 판결을 받았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회사가 도우미 채용과 교육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회사에서 연봉을 지급하는 캐디마스터가 도우미들을 규율’한다는 이유를 들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행정법원은 이를 뒤집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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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중앙노동위원회 판결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 줘도 상급심으로 올라가면서 번복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3월 7일 여의도에서 열린 여성노동자 대회.
김모씨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김씨는 1991년 모 제분회사에 일반사원으로 입사하면서 회사측의 요구에 따라 ‘결혼과 동시에 사직하겠다’는 여직원 계약서를 제출했다. 김씨는 몇년 후 결혼할 것임을 회사측에 알리면서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했으나 관행상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것이 부당해고란 사실을 안 김씨는 1998년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해 복직 명령을 받았다. 또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에서도 모두 회사측의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는 ‘사직서 제출이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고 결혼퇴직 관행이 있었음을 추단할 증거가 없다’며 행정법원의 판결을 번복했다.
이처럼 지방·중앙노동위원회에서 내린 판결이 상급심으로 올라가면서 번복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와 전국여성노조는 3·8 여성의 날을 맞아 정부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여성노동 과제를 제출하면서 ‘상급심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 기능강화 방안 마련’과 사용업체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교섭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외에도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인정, 단기근로계약을 반복 갱신해 사실상 정규직처럼 사용하는 탈법적 고용 근절, 모성보호관련법 활성화 대책 마련, 가내노동자 보호대책 등을 촉구했다.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이 있을 경우 이 사안은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최고 5단계를 거치며 재심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중앙노동위원회의 판결에 불복해 회사나 노동자측이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피고는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된다.
그러나 소송에 들어간 사안을 다루는 중앙노동위원회 인원은 5명밖에 안되는데 반해 최근 들어 소송은 점점 늘어나고 있어 충분한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앙노동위원회 송무팀 관계자는 “현재 직원 한 명이 맡고 있는 법원에 계류중인 사건은 70∼80건이며 전체적으로는 350건 정도가 있다”고 밝힌다.
늘어나는 업무량뿐 아니라 중노위 차원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는 것도 문제다. 이 관계자는 “법정에서 피고는 중노위 위원장이지만 피고보조참가인인 근로자가 설명해야 할 내용이 많다”며 “그러나 20∼30%의 근로자는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어 그냥 재판에 들어간다”고 설명한다. 중노위 역시 내부에 소송을 도울 변호사가 없는 형편이어서 변론에 힘을 싣기가 어렵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왕인순 부대표는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 특위에서 논의를 하고 있을 뿐 정부, 정당, 국회에서는 비정규직 관련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과 노동위원회의 활동은 대단히 중요하다”며 “특히 행정·민사 법원에 비해 노동 문제에 대해 전문성을 가진 노동위원회는 자신들의 판단이 법원에서도 관철되도록 해야 한다”
고 주문한다.
또 왕 부대표는 “법원에서 잇따라 노동자 패소 판결을 내리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은 법에 명시된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라며 중앙노동위원회의 적극적인 변론과 법정의 공정한 판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송안 은아 기자sea@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