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한국영상원교수, 영화평론가

여성적 공간은 여성작가들을 사로잡아 온 문제다. 글을 쓸 수 있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도 그렇고, 소위 시민사회의 공공영역 형성 이후 어떻게 여성적 대안 공간을 만들 것인가 혹은 그 존재의 역사를 드러낼 것인가를 모색하는 저작들도 있다.

하버마스의 이성적인 공공영역과 대조적으로 벤하비브라는 학자는 ‘추방자와 그녀의 그림자’라는 글에서 여성적이고 대화적이고 에로틱한 살롱이라는 ‘우정이 꽃피는’ 공간 대해 말하고 있다.

매우 재능 있는 유태계 여성 집단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성들의 우정이 언어화되는 영역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많은 번역서를 갖고 있는 학자라는 하버마스의 남성 자산가 중심의 공공영역의 틀을 벗어나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18세기의 커피하우스나 살롱이라는 공공영역에 관해 굳이 이야기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열리는 여성들만의 공간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혹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제기되는 여성의 문제를 말하기 위해서다.

‘LBCITY’‘할미꽃’‘달나라 딸세포’‘여성들의 인터넷, 여성마당’이나 ‘여성과 인터넷’‘일하는 여성들의 네트워크’‘언니네’ 들이 유쾌하면서도 절절하게 여성들의 네트워크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소위 글로벌 시대, 여성노동자 10명 중 7명은 비정규직이라는 험악한 노동 조건과 상황을 다루는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라는 영상물의 예고편을 본 것도 위 네트워크를 통해서다.

울산현대 노조의 부당한 여성노동자 해고에 대한 라넷 영상집단의 기록물 ‘밥꽃양’과 울산인권영화제의 사전 검열과 그 이후 그 사건을 둘러싼 ‘밥하는 아주머니들의 더운 이야기’를 열린 공간으로 내보내기 위한 싸움도 넷 공간과 일인 시위들로 이어지고 있다.

90년대 후반 여성, 노동, 인권, 퀴어 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들이 공공영역과 대안·대항 영역을 만드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했다면 그와 더불어 현재 가장 뜨거운 공간은 바로 컴퓨터와 ADSL이 만들어내는 가상 영역이다.

‘밥꽃양’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주제도 그렇지만 그것이 열린 세상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겪은 각종 사건들은 매우 첨예한 당대의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다. 전지구화 자본의 유연노동이라는 구조조정 속에서 여성들의 비정규 노동군화와 성별화된 계급 구성, 또한 소위 성별화된 계급 의식이 ‘총체적인 대의’에 분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이미 오래된 그러나 다시 강화되는 불안.

또한 한 지역에서 진보적인 성격의 영화제를 꾸려가고 있는 집행부들의 ‘지역적’ 대변성 문제 등이 뒤얽힌 사안인 것이다.

‘이곳은 노혜경의 문학세상입니다’로 열리는 사이트에서는 그녀의 시를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밥꽃양’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기여한 글들도 볼 수 있다.

노혜경의 <저개발의 기억>이라는 시의 마지막은 ‘정말 그렇군. 어떤 괴물이든 낳아야 할 밤이군’이라는 구절로 끝난다.

정말 그렇다. 희생된 여성을 여성들이 기리는 여성장이 있다면, 여성의 언어 공간인 ‘여성장’도 동시에 열리고 있다.

여성주의 말들이 광속을 달리고 있다. 가상의 하늘을 날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과연 어떤 괴물들이 뛰쳐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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