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김현주/ 천리안 여성학 동호회 부시삽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요즘 여자들은 과거 수십년 수백년전 여자들보다 편하게 산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뉘앙스는 마치 남자들보다 훨씬 편하게 살면서 뭐가 힘들다고 투정이냐는 말투이다. 돈도 안벌고, 밥은 전기밥통이, 빨래는 세탁기가, 그리고 여권신장도 상당히 되어 있는데 무슨 불만이 많냐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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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맞는 말이다. 요즘 사람이 조상들보다 노동환경면에서 편한건 사실이니까. 꽁꽁 언 냇물에서 얼음을 깨가며 빨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장작불 때며 밥을 짓는 것도 아니고, 전기코드만 꽂아두면 밥이 저절로 되는 세상이니, ‘요즘’ 여자들은 팔자가 늘어져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비교하자면 요즘 ‘남자’들은 편해지지 않았나? 도끼로 장작을 패고, 낫으로 벼베기를 해야 했던 것이 이제는 대부분 기계화되어 남자들의 노동도 많이 편해졌다. 십리길 이십리길을 걸어 다녔던 조상의 삶과 비교하자면 요즘 남자는 차도 타고 다닌다.

여성만 편해진게 아닌데 왜 어떤 사람은 “요즘 여자들은 편하다”고 하는 것인가. 요즘 남자들은 차가 있어서 편하겠다는 둥, 팩스나 복사기가 있어서 일하기 편할 거라는 말은 하지 않던데!

‘요즘’ 여자는 ‘과거’ 여자보다 편하다고 하지 않고, 요즘 ‘여자’가 과거 ‘여자’보다 편하다고 강조하는 저변엔, 보다 편한 삶을 살았던 ‘남자’들이 종처럼 살았던 ‘여자’들을 경계하는 의미가 짙다.

모 그룹 회장이 청문회에서 직원들을 머슴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는데, 과거 ‘여자’들의 노동환경은 머슴같은 종의 위치였다. 그 종들은 몸이 바스러지도록 일해야 하는데, 지금은 기계가 대신 일해주고 있고 평등한 인권도 주장하고 있다. 머슴들이 일을 열심히 하나 안하나 감시했던 회장한테 인권 얘기까지 꺼내는 것처럼, 어떤 사람 눈에는 밥통때문에 편해진 종 같았던 여자들의 편안함이 못 봐주겠다는 거 아닌가.

요즘 남자들 괴로운 만큼 요즘 여자들도 그리 편할 건 없다. 차라리 과거의 대가족제도에선 자연스럽게 공동육아가 되었지만, 지금은 ‘나홀로 육아’에 고통받는 여성들이 많다. 또한 제일 늦게 취직되고 제일 먼저 해고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맞벌이가 아니면 자식 교육시키기도 어려워 급한 불 끄는 심정으로 여성들

은 몸으로 때우는 일용직에 몸을 던지고 있다.

밖에서 이렇게 일하고 돌아와서도 가사분담의 고지는 높기만 하다. 남자들은 여전히 집안일

을 ‘돕는다’고 생각할 뿐이지, 자신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의 후손들은 가사분담이 거의 안되는 2002년도의 지금 상황을 두고 남자들이 어떻게 이혼당하지 않았는지 신기해 할 것이다. 물 떠와라! 재떨이 갖고 와라! 온갖 잔심부름으로 호령했던 과거를 그리워할 때가 아니다. 가사분담도 되고, 취직도 되고, 육아고통에서도 벗어나고! 여성들도 좀 그래보자. 그래서 너하고 나하고 ‘같이’ 행복해져 보자. 밥통 따위로 요즘 여자들이 편하다는 말은 그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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