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학을 앞두고 지난 2월말에 2박3일간 새터에 다녀왔다. 새터로 출발하기 전에는 솔직히 선배들이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지 않을까, 장기자랑 같은 것을 시키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하루 전까지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가기로 결정했다.

목적지인 속초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는 각 단과대별로 준비한 행사를 했다. 과내의 학회나 소모임의 공연을 보고, 문선을 배워서 같이 추고, 행사가 끝난 후에는 과별로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밤에는 조마다 배정되어 있는 방에서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방은 게임해서 술먹기 같은 걸 하지 않았고 선배들도 술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이야기를 좀 하다가 방에 들어가서 잤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자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둘째 날 저녁에는 전체 학생들이 모두 모여서 행사를 가졌다. 각 동아리들의 공연이 이어지고, 촌극도 하고 중간 중간에는 몇 개의 영상물을 틀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 영상물 중에 하나가 성폭력의 유형들과 그에 대한 대책방안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 영상물이 끝나고 나서 사회자들은 학생들에게 ‘삐∼!’를 알려주었다.

누군가 성차별적, 성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거나 그런 행동을 할 때 주위에서 방관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 큰소리로 삐∼! 라고 외치라는 것이다. 언어적, 신체적인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주위의 영향력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지적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성차별·성폭력 없애기 위한

작은 실천방안이 웃음거리로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재미있거나 우습게 받아들였는지, 그 후에 계속해서 별말도 아닌데 삐∼!를 연발했다. 유난스러운 말이나 행동이 아닌데도 삐∼!를 외치는 것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그러면서 서로 재밌다고 막 웃는다. 바로 그런 때 성차별, 성폭력을 없애기 위한 작은 실천 방안이 한낱 웃음거리로 변하고 만다.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다. 나중에 정말로 그러한 상황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사용할 때 그것마저도 장난으로 묻히고 만다면 그땐 결코 ‘웃지 못할’ 일이 될지 모른다.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해놓고서 “에이… 장난인데 뭐”라든가 “농담인데 왜 그래” 라는 식으로 웃어넘기는 행동들이 우리 사회에선 너무도 쉽게 용납된다. 정말 ‘웃지 못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말이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 간 새터였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던 일도 많았다. 술자리에서 선배들의 분위기가 강압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좋았다. 그렇지만 그 삐∼!를 외치면서 좋아하던 웃음소리가 끝까지 귀에 맴돌면서 나의 마음을 불편하고 찜찜하게 만들어 버렸다.

강우 진경/한국외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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