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설봉호 선상좌담

'새해맞이 남북공동모임' 마치고

지난 2월 26일부터 3일동안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02 새해맞이 남북공동모임’은 행사 이튿날 오전 북측이 무산통보를 해옴에 따라 남측 참가자들만 준비된 행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28일 고성을 출발해 속초로 돌아오는 설봉호 안. 행사가 무산된데 대한 허탈감을 함께 싣고 떠난 배 안에서 참가자들은 2박3일의 여독을 푸느라 모두 지쳐있었다.

남북여성통일대회를 마무리 짓지 못한 아쉬움이 누구보다 컸던 여성계 대표들은 기자가 이번 행사에 대한 평가와 추후 남북여성교류의 과제에 대해 즉석 좌담을 요청하자 피곤한 기색도 없이 흔쾌히 응해 주었다. 설봉호 안에서 이루어진 좌담은 속초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1시간 30분이 넘도록 열띠게 이어졌다.

좌담에 참가한 여성계 대표는 정현백 한국여성연합 공동대표, 고기효 민화협 여성위원장, 심영희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공동대표 최영희 우리민족서로돕기 여성위원장, 한지현 민주평통 여성분과위원장이다.

= 비록 대회는 무산되었지만 행사 진행 과정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정현백 : 대회가 무산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이후 그래도 여성계 대표들이 다른 분과보다 먼저 제안서를 발표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임에 따라 남북교류에 있어서 여성의 저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여러 통로를 통해 남북여성통일대회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렸다는 것이 뿌듯하다.

최영희 : 전반적으로 걱정이 앞선다. 북측과의 관계가 형식적인 행사는 계속 되겠지만 실상 통일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겠느냐라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이번 행사도 그렇다. 남북이 여러번의 기싸움을 할만큼 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

심영희 : 여성교류는 남북이 작년에 이미 합의한 사항이 있기 때문에 양측 정부에서 다소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성과를 유지시키려 할 것이다.

= 남북여성통일대회 실무회담을 제안했는데 가능하겠는가.

최 : 떠나기 전 북측 실무단 백문길 민화협 정책실장과 잠깐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3월 중에 북측 여성계에서 팩스가 올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남북 여성들은 이미 약속한 것이 있으니까 잘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남북교류 중 여성분과 실무를 맡은 사람이 전하는 말이니까 희망은 있다고 본다.

= 이번 행사를 지켜보면서 남측 주석단에 여성계 대표가 빠지는 등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많았던 것 같다

정 : 여성계가 거둔 남북교류 성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석단 대표에서 여성이 빠지는 등 준비위측이 젠더마인드가 약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1992년 9월 1일부터 6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제3차 토론회는 남측 대표단이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을 방문한 최초의 민간교류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부에서 발행한 <통일백서>에는 이런 여성들의 역할이 생략되었다. 통일문제가 남성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 통일과 외교 부분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여성인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정 : 사실 통일부에 여성정책 담당관을 배치해 달라는 요구는 여러 차례 했지만 통일부 예산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나마 통일정책자문위원에 여성을 25%까지 할당한 것도 큰 성과였다. 남북 장관급 회담 때도 여성문제를 아젠다로 채택해 달라는 요구를 두 차례나 하는 등 문을 두드릴 만큼 두드렸다고 본다.

심 : 통일교육심의위원도 과거에 비해 여성이 많이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통일부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을 두도록 요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고기효 : 이번 여성통일대회만 성사시킨다면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여성계가 본격적으로 제의한 통일부, 남북회담 사무국 내 여성전담부서 신설, 통일관련 위원회 여성참여 30% 보장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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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정현백 교수, 한지현 교수, 최영희 사장, 심영희 교수, 고기효 위원장.

= 통일운동을 진행하는데 있어 여성계의 과제는.

최 : 남측의 모든 여성들을 어떻게 아우를 것인가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형식적으로나마 기존의 단체중심으로 진행한다 해도 그 단체가 과연 여성계를 대표할 수 있느냐도 문제이지만 개별 활동가들을 어떤 그릇으로 담을 것인가도 고민해봐야 한다. 현재 민간차원의 남북교류가 7대 종단, 민화협, 통일연대 3자 구도로 가고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여성계가 이 구도 속에 합류할 수 밖에 없다. 북측에서도 일 위안부 문제를 공동으로 제기한 이후 새로운 통일운동의 과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제 일반인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주제의 남북여성교류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심 : 3자 연대 속에서 여성이 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도 좋지만 또 다른 면도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의 구도는 모든 결정이 정치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여성계가 성과를 얻어낸 부분이 있어도 묻히는 측면이 많다. 여성계가 독자적인 교류를 모색해 보는 문제도 고려해 봐야 한다. 정치바람을 좀 덜 맞으면 성과는 좀 미미해도 여성교류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최 : 정치적인 고려는 안할 수 없다. 매번 느끼는 것인데 남북교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교류는 당분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심 : 맞다. 아직 그런 조건은 안돼 있다.

한지현 : 무엇보다 북측을 도와주는 이유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시적 성과를 많이 내고 있는 종단쪽 교류 부분은 여성계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원불교에서는 분유 보내기, 생리대 보내기 등 북측 여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물품 지원을 하고 있다. 민주평통 여성분과에서도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여성통일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중장년층 여성에게 통일의식을 심어주는 작업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분유나 생리대를 지원하자고 하는 것이 보수성을 띤 여성들을 아우르는 좋은 방법이다.

최 : 여성계도 남북교류에 있어서 북측에 재정적 지원 등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금강산 설봉호 = 박정 희경 기자 chkyu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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