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갑 속에는 카드가 딱 한 장도 아니고, 세 장이나 잠을 자고 있다. 은행에 갈 때마다 온갖 달콤한 말로 카드를 권유하는 직원의 열성에 못 이겨, 마트 앞에서 반찬통 하나 얻어 보려고… 등등 이유는 다양한데, 어찌 어찌하여 사용하지도 않는 카드가 세 장이나 생겨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드가 필요해서보다는 나와 비슷한 이유로(요즘에 카드 만들면 현금까지 주고 있으니) 하나 이상씩 만들었을 것이다.

카드 광고도 한창 붐이 일던 초창기에는 그 카드가 주는 혜택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렇게 많이 주는 줄 몰랐습니다”라는 기자회견 멘트, “줄 때 받자” 등등. 엄청 퍼주는 카드사 덕분에 약 2년 사이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카드 한 장씩 가지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고객 확보가 중요하던 처음에는 자신들의 상품이 더 좋은 혜택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 만드세요 라고 어필을 하는 광고가 주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만든 카드를 쓰게 해야 한다. 카드 회사가 손해를 볼 정도의 사은품을 줘가며 카드 가입자를 늘리는 것은 카드는 만들어 두면 언젠가 쓰게 마련인 잠재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잠재 고객들을 깨울 때이다!

~20-1.jpg

멋진 남자 내세워 카드사용 부추겨

박찬호를 모델로 내세운 모 카드사는 전적으로 박찬호가 가진 이미지로 승부하고 있다. 천문학적 숫자의 연봉을 가진 메이저리그 스타 박찬호가 일등 카드를 어필하는 기호가 된다. 이 광고는 “장가가고 싶다”라는 노골적인 멘트를 통해 박찬호에게 대한민국 일등 신랑감의 이미지를 부여하여 ‘일등 신랑감=일등 카드를 쓰는 사람’이라고 의미 짓는다.

다른 카드 광고의 정우성은 능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행복이 뭔지도 아는 남자다. 멋진 친구이자 멋진 남자인 그는 카드를 쓴다고 한다. 카드를 쓰는 것과 세련된 엘리트의 이미지를 병치하여, 능력 있으면서도 여유를 아는 생활을 하려면 카드 정도는 써야지 라고 보는 이들을 부추긴다.

2000년 여름, 처음 신용카드가 거리로 나왔을 때 ‘패밀리 레스토랑’의 시식권을 사은품으로 주었던 마케팅은 정말 먹어줬다. 물론 공짜로 뭔가를 얻는다는 것도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겠지만, 그것이 ‘패밀리 레스토랑’의 쿠폰이었다는 점은 정확하게 소비자들을 파고들었다. 지금 푸우 인형 준다고 카드 만드는 사람은 별로 없다. 15만원 상당이라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쉽게 카드 하나 만들고 우리도 패밀리 레스토랑 한 번 가보자, 혹은 카드를 사용한다는 것이 보다 상류 문화를 향유하는 것인 양 느껴지게 한 것이다.

마찬가지다. 일등 신랑감 박찬호도, 능력 있는 남자 정우성도 보통 사람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것은 보다 세련되고 멋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왠지 고급문화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고, 내 생활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니 이런 생활을 위해 우리 카드를 쓰자.

“같이 쓰실래요?” 씁쓸함이

하지만 부와 명예를 얻은 성공한 스포츠 스타가 자신 있게 “같이 쓰실래요?”라고 말하는 걸 보면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그가 일등 신랑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조건과 이유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박찬호만큼 돈도 명예도 가지지 못한 보통 신랑감들은 그저 카드나 쓰면서 박찬호를 따라가려고 애써야 하는 걸까. 여자들은 “같이 쓰실래요”라는 말에 가슴 설레며 그냥 주는 카드를 받으면 되는 걸까.

정우성처럼 유럽풍의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전원주택 즐비한 풍경인 이들이 얼마나 될까. 역시나 이 광고에서도 여자는 남자의 선물을 받기만 한다. 주부가 카드를 펑펑 쓰는 광고는 없다.

세칭 상류 문화라고 보여지는 것이 돈이 많다거나 넓은 집에서 산다거나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난다거나 하는, 물질적 가치나 보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념으로 표현되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광고 생리로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적당히’ 보수적인 이 광고들이 나는 불편하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넥타이와 청바지가 평등한 세상’, 광고 세상에서마저 너무 어려운 걸까?

김이 정민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