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낳았으니 네가 책임져라?
네가 낳았으니 네가 책임져라?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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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시즌…엄마들의 ‘노력봉사’ 끝이 없다
또 3월이다. 매년 이맘때면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내는 엄마들을 위한 다양한 정보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서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준비하고 챙겨야 할 일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국민 모두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초등의무교육을 받는데 사전에 준비할 게 왜 그리 많은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런저런 것들을 점검해 어렵사리 ‘준비된 학생’을 만들어 학교에 보내면서 학교에서 감당해 줄 일정 부분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미 아이를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데. 대체 아이를 기르는데 엄마가 들여야 할 공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끝이 안 보인다.

지난 해, 서울 시내 Y초등학교에서 ‘어머니회’ 전교 부대표를 맡았던 주부 H씨의 1년은 분주했다. 임기 중, 자매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의 모 초등학교에서 한국의 초등학교 교육실태를 둘러보기 위해 3박4일 일정으로 방문한 교사들의 관광과 식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얼마간의 돈을 걷어 대접했다. 또 예산을 담당하는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회의장에 꽃과 차를 준비하고 한복차림으로 도우미 역할을 하는 한편 장학사에게 어머니 대표로서 학교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이상의 대외적인 일 외에도 입학식, 졸업식, 스승의 날 등의 크고 작은 교내 행사에도 물심 양면으로 지원했다. 그런가 하면 학급별로 환경미화와 신학기 수업을 위해 개학 전에 교실대청소도 하고 학기 중 소풍이나 운동회 때도 필요한 물품이나 음료, 식사 등을 마련하는 일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H씨의 경우는 책임 있는 일을 맡은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한 학급당 30∼40여 명의 학생 수를 가진 학급마다 10명 내외의 ‘어머니 일꾼’들이 있으니 결코 특별한 몇몇의 일이라고 보기엔 적지 않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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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청소·급식·행사도우미까지

한편 학교의 일을 맡지 않은 주부들 역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후 더 바빠졌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아이들 급식을 위해 평균 월 1회 정도 급식봉사(급식을 배분하고 치운 뒤 교실청소까지)가 있다. 이 일은 저학년 아이를 둔 모든 엄마의 일로 ‘어머니 일꾼’이 아닌 엄마의 공식적인 학교 일은 이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전업주부들은 친구를 만나는 일이나 취미활동에서 멀어지고, 취업주부들은 갓난아기 때부터 힘들게 유지해온 직장을 포기하기에까지 이른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주부 J씨는 아이의 과제가 도저히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현장학습이며 체험학습 등, 아이 손에 들려보낼 자료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인터넷을 뒤지다가 인터넷에 ‘도가 텄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를 둔 일산의 주부 C씨는 지난 여름방학에 아이의 담임교사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내용인 즉, 아이가 <즐거운 생활> 시간에 음계를 읽을 줄 모르니, 여름방학을 이용해 피아노학원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또 상계동의 주부 K씨는 지난 해, 한 학기가 끝나고 그 동안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가지고 온 <수학>교과서를 보고, 넌 수업시간에 공부 안하고 뭐했냐고 다그쳤다. 교과서 내용 중 다양한 학습도구와 번거로운 설명을 필요로 하는 부분은 아예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음을 아이의 말과 같은 반 엄마와의 전화통화를 통해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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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아이가 스스로 만들거나 준비하기 어려운 준비물과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과제물들이 많은 것은 물론, 학교에서 배울 것을 어느 정도 미리 배우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각 과목별로 한 단원이 끝나면 학교수업 내용의 충실 여부를 떠나 수행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요즘 초등학교의 실정이니 이 모든 과정이 엄마의 숙제가 되는 것이다.

서울 중계동에 사는 주부 L씨는 학교장 재량에 따른 체험학습 일자를 통보 받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약사인 L씨는 당장 딸아이를 어디다 맡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처음 몇 번은 아르바이트할 사람을 구해 직장을 쉬면서 머리를 짜내 박물관이나 서울 시내 역사유적지나 식물원을 돌다가 이제 더 마땅한 것이 없어 집에서 가정학습을 시키고 있다. 사전에 다양한 사례나 방법에 대한 안내도 없이 시행하면서 날짜도 학부모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에겐 아무 대책 없이 혼자 집에서 문제집을 들추고 있는 것이 ‘체험학습’이고 맞벌이 부모에겐 숙제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이쯤 되면 엄마들에게 아이를 키워 초등학교에 보냈으니 이제 한숨 돌리겠다고 말했다가는 잘 하면 물정 모르는 사람되고, 잘 못하면 몰매 맞을 수도 있다. 학교 일 보랴, 아이 학습과정 챙겨나가랴, 가사에 직장 일에 엄마들은 하루해가 짧다. 그럼에도 실제로 아이들의 교육과정이나 교육환경 등 어느 하나도 결정할 권리는 없는 것이 공교육 체제에 자식을 밀어 넣은 요즘 엄마들이다.

두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상계동에 사는 주부 C씨는 지난 해 갓 입학한 막내 때문에 처음으로 학급에서 ‘어머니회’ 활동을 했다. 적어도 내 아이의 학교 생활을 좀 더 자주 보고싶은 욕심이 없다면 아마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거며 이제는 아이의 학습 쪽에만 신경을 모으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뭔가 아이들의 교육현장을 개선할 만한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장학사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표단이라면 좀 다를 것 같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장학사에게 건넬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어머니 회원들 간에 충분한 자료조사나 의견 조율을 한 적이 있냐고 위의 H씨에게 물었다.

H씨에 따르면 그런 일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어머니회’가 장학사와 만나기 전 모든 자료가 이미 나와 있었다는 것. 어머니회원들은 그것을 어머니 이름으로 전달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니까 분명히 교육현장의 한 주체이면서도 알 권리는 없고, 다 결정된 일들의 매끄러운 진행을 돕는 과제만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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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올바른 사회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사회·가정·학교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우리의 초등교육 현장에서 가정의 할 일은 ‘선수학습’을 책임져주고, 교실 학습에 필요한 준비물 잘 챙겨오고, 학교의 방침에 따라 대외적인 역할은 물론 몸으로 때우는 일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의무는 가정의 구성원 중 엄마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부과됨으로써 또 하나의 중요한 아이교육의 주체인 아버지는 교육 현장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도대체 엄마들을 봉으로 아는지

이런 분위기에서 서울시내 모 초등학교에 직장을 다니는 엄마 대신 할머님이, 한국말이 서툰 일본인 엄마 대신 아빠가 아이의 식사당번으로 왔다. 함께 봉사한 엄마는 물론 담임교사도 불편하여 급식당번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일을 시키기(?)가 어려웠으리라. 결과적으로 어떤 엄마는 식사당번을 하는데 어떤 엄마는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식사당번을 면제받은 것. 여기서 전업주부와 취업주부 사이에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입장 차이들로 인해 전업주부와 취업주부 사이에 생긴 골은 엄마들에게 지나치게 과중한 의무를 부과하는 교육현실에서 비롯되어 이제는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불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이 깊은 골도 엄마들의 이기심 탓이라고 한다. 도대체가 엄마들 없이 초등교육이 제대로 수행될지조차 의문인데도 무슨 일만 생기면 모든 책임은 엄마에게 있다(네가 낳았으니 네가 책임져라?)고 한다. 도대체가 엄마들을 봉으로 아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엄마 소집령 내역

1. 학기별 대청소(유리창 및 전열기구의 먼지제거 포함)

2. 급식당번 및 청소(저학년)

3. 학습도구 만들기(저학년)

4. 야외학습 보조(저학년)

5. 교내환경미화(식수 등)

6. 교실 환경미화(1~2주간 물심양면으로 봉사)

7. 학교손님 대접

8. 졸업식 및 입학식 날 협찬

9. 각종 기념일(스승의 날, 어린이 날, 운동회 날 등)에 음료나 음식 따위 먹거리 제공

10. 어린이 단체(아람단, 우주소년단 등)활동 때 보조

11. 등하교 시, 건널목에서 아이들 보호

12. 선생님 유사 시, 수업 메우기

<양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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