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볼 때 우리는 가끔 감독보다도 시나리오 작가 때문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찰리 카우프만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디지털 복제기술 시대의 정체성 문제와 섹슈얼리티라는 제법 무거운 주제를 아주 가볍고도 경쾌한 그리고 깜짝 놀랄 상상력으로 풀어낸 재간꾼이다.

이 영화로 2000년 미국인디영화씬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나리오 작가 데뷰를 했던 그의 차기작이 <휴먼 네이쳐>다. 기발한 설정과 여기저기서 가볍게 폭발하는 그러나 경박하지 않은 유머의 각본, 그리고 그것을 영화적으로 세련되게 시각화하는 감독 미셸 곤드리의 솜씨가 어우러져 <휴먼 네이쳐>는 관객에게 지적이면서도 물리적인 수준놓은 괘락을 선사한다.

영화는 세 명의 남녀가 각각 국회청문회, 교도소, 그리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림보에서 인터뷰하는 장면과 그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관련된 두 명의 남자와 한 여자가 공통적으로 경험한, 그러나 각기 다른 관점과 입장에서 해석한 사건들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구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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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관객은 한 인물의 시점과 견해에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지만 영화는 오히려 <라쇼몽>에서 그랬던 것처럼 관객이 각각의 인물들을 그들의 시각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즉 그들이 엮어내는 사건과 정황들, 더 나아가 그러한 사건과 정황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 특히 이 영화의 경우 ‘인간 본성’의 문제를 한번쯤 각기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질문하게끔 유도한다.

영화는 어려서부터 야생의 숲에서 원숭이처럼 자라난 한 남자가 털복숭이 자연주의자 여자와 쥐들에게 식탁예절을 훈련시키는 문명론자 남자 사이에 끼어들면서 블랙유머적 웃음이 가득찬 실험의 길로 접어든다.

과학자는 이 원숭이 남자를 실험실에 가두고 보상과 처벌이라는 학습의 룰을 통해 빠른 속도로 문명 세계에 편입시키고, 과학자에게서 버림받은 털복숭이 여자는 그를 납치해 과학자와 똑같은 고집과 억지로 다시 자연에 맞추어 길들인다. 여기서 주의깊은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바로 이 원숭이 남자의 ‘변신술’이다. 그는 자연과 문명, 본성과 교육이라는 이분법적 범주가 상당히 유희적, 구성적 범주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원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가, 혹은 영화가 관객들에게 뒷문으로 슬쩍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휴먼 네이쳐〉는 털복숭이 여인이라든가 원숭이 인간 실험 등 기발하고 재치있는 설정과 세 주인공을 얽히고 설키게 하는 극의 구성에 있어 남다른 솜씨를 자랑하는 영화다. 극을 흥미진진하고도 탄탄하게 이끌어 가는 세부묘사들도 뛰어나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서사 전체를 떠받치는 중심축이자 그것이 위치하고 있는 의미망, 즉 ‘문명과 자연’‘본성과 교육’이라는 문제의 낡은 틀을 뒤흔들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문명과 자연, 본성과 교육 등의 이분법적 범주가 얼마나 인공적인가를 유머로 풀어냄으로써 루소식 강박증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성욕’과 해체되지 않은 ‘사랑’의 유쾌한 지적 농담 정도의 차원에서 주춤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옥/ 이화여대 여성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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