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고장났다고 지하철역 폐쇄

새해부터 열차운행업체 사우트웨스트사 노조원의 파업으로 영국 철도가 연일 언론 보도의 초점이 되고 있다. 블레어 총리도 인정했듯이, 영국 철도는 유럽에서 가장 낙후한 시스템, 서비스, 안정성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지난 신문에는 7조 파운드 규모의 철도시스템 개혁안이 나왔다. 또 TV뉴스는 2년 전 졸면서 열차운행을 하다가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철도기사의 공판소식을 전했다. 저녁에는 런던에 사는 친구가 전화로, “출근시간에 지하철 한 노선이 운행을 중단해 두 정거장이 떨어진 역까지 걸어가는 바람에 지각했다”고 투덜거렸다.

2년 전 영국에 공부하러 온 나는 여행시간을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시설이 낙후된 공공교통시스템에 혀를 내둘렀다. 왜 영국은 다른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체계적인 대중교통수단을 제공하지 못할까?

얘기는 대처가 수상으로 있었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질적인 영국병을 고치겠다고 철의 수상이 뽑아든 칼은 ‘작은 정부, 규제완화 그리고 사적부문의 의존’이었다. 국민에게 최소한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효율성이 없는 공기업은 가차없이 민영화시켜 시장경쟁을 통한 이윤창출과 효율성 향상을 주목표로 했다.

20년 후 지금의 영국 철도는 25개 사기업의 이해, 이윤관계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서 운영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 회사들은 이윤을 늘이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을 고용하고 시설 투자 및 서비스 향상은 뒷전으로 했다. 잦은 연착과 사고, 그리고 노조와 승객들의 불만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였다.

기간산업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철도사업을 무분별하게 민영화한 결과이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영국 정부가 철도에 큰돈을 쏟아 붓는다고 발표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그 돈으로 철도산업을 개혁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한국은 IMF 이후 민영화를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삼고 있다. 민영화가 시장경쟁을 통해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경영을 혁신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채찍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경제부문에서 ‘민영화 = 이윤창출, 효율성 향상’이라는 공식이 적용되지 않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중교통서비스는 민영화가 가져오는 장점보다는 폐해가 클 수 있다. 그리고 그 폐해는 서민들에게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

아무튼, 런던 여행을 계획 중인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철도를 이용하기 전에 아침뉴스를 보길 권한다. 어느 지하철역이 폐쇄되었는지, 어느 노선이 언제까지 운행을 중단하는지 알면 낯선 곳에서 고생하는 일을 줄일 수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왜 역이 폐쇄되느냐고? 큰 이유 중 하나는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서 전체 역을 폐쇄하는 경우다. 에스컬레이터 고장은 고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고장을 고칠 사람이 부족하다면 믿을까?

이주영 영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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