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anti-hoju.lawhome.co.kr

다른 날에 비하여 특히 상담이 많은 월요일 오후, 50대의 여성 내담자가 상담실에 들어오셨다. 무슨 일로 상담을 오셨느냐는 상담자의 질문에 털어놓은 사연은 다음과 같다.

“결혼기간 동안 남편과는 큰 불화없이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4년 전부터 남편이 집을 나가 지냈습니다. 남편은 사업상 그럴 이유가 있다고 했고, 저는 그나마 두 딸의 학비를 보내주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제 더 이상의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남편이 사는 곳을 추적해 보니 과거에 같이 근무하던 여직원과 살림을 차리고 살고 있었으며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아직 그 아이를 호적에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반대하면 그 아이는 우리 호적에 오르지 못하지요?”

내담자의 질문에 상담자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웠지만 우리의 법 현실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외도하여 낳은 혼외자라 할지라도 아내인 내담자의 동의 여하와는 관계없이 남편의 호적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내담자가 생각하는 대로 호적이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을 기준으로 한 우리 호적이 아니라 호주인 남편만을 기준으로 하여 편제된 것임을.

호주제 폐지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질문 중 하나는 호주제로 인하여 남성들이 어떠한 권리 내지는 이익을 얻느냐는 것이다.

즉 호주제로 인하여 호주인 남성들이 받는 가시적인 이익이 없으므로 호주제는 있어도 그만이지 않느냐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위의 사례에서와 같이 남성 중심적이고 부계혈통 위주인 호주제는 여성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주고 있다. 더욱이 민법상 호주승계 순위를 아들-미혼인 딸-처-어머니-며느리의 순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민법 제984조), 아들이 없는 위 가정의 경우 혼인외의 아들이 혼인중의 자녀인 두 딸들에 우선하여 호주를 승계하게 된다는 사실은 아내와 두 딸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 내에서 우리 사회는 이미 남성과 여성을 차별한다. 모든 아들은 모든 딸에 비하여 우월한 법적 지위를 인정받고 성장하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을 습득해 간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차별적 의식은 전사회적으로 남성 우월, 여성 열등 의식을 확대재생산한다. 호주제는 오늘도 개인, 가정, 사회의 곳곳에 엄청난 피해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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