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이장 임명 둘러싼 민관 갈등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주민들이 선출한 여성 이장에 대해 도암면 측이 임명을 보류하고 있어 주민들과 행정기관이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해 12월 13일 횡계13리 주민들은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주민들과 마찰을 빚어온 전 이장 ㅊ씨를 해임키로 하고, 그 마을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ㅇ씨를 새 이장으로 선출, 면장에게 이장 임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면장은 ㅇ씨의 이장 임명을 불허했다.

주민들 “우리가 뽑았는데 임명장 달라”

면사무소 “남편에게 문제있어 곤란하다”

당시 면장 면담시 동석했던 마을주민 ㅇ씨는 “면장이 ‘강원도에는 여성이장이 배출된 적이 없고, 현재 도암면 이장 22명이 모두 남자인데 여자가 한명 끼면 분위기상 어렵지 않겠느냐’며 거부의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이에 주민들이 “여성차별적이다”라고 항의하자 면측은 “ㅇ씨가 운영하고 있는 슈퍼마켓이 아파트 주차장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건축물이라 이를 철거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주민들의 임명 요구가 있은 지 한 달이 지난 16일 현재까지 임명을 보류하고 있다.

“면내 이장이 모두 남잔데 여자가 끼면 어렵지 않겠느냐”

면장의 업무를 보조하는 이장은 마을주민들이 뽑은 인물을 면장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선출된다. 많은 잡무를 처리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월 10만원의 활동비와 월 두 차례 지급되는 회의비 2만원, 총 12만원이 전부인 그야말로 봉사직이다.

횡계13리 주민들은 면사무소 측이 계속적으로 행정명령 불이행을 이장 임명 불가의 이유로 들자 “주민의 편의를 위해 현재 있는 곳에 그냥 두게 해달라”는 요지의 탄원서에 150여 명의 서명을 받아 면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한 주민은 “이 동네는 겨울이면 온통 꽁꽁 얼어붙어 계단을 이용해 지하로 내려가다 다칠 위험이 있고, 다른 점포도 없는 넓은 지하에 슈퍼마켓만 들어가면 강도가 들 우려도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면사무소 측은 시종일관 “ㅇ씨의 남편이 면장의 행정명령을 지키지 않는데 어떻게 그 아내를 면장의 명령을 전달하는 이장으로 임명할 수 있겠냐”며 “불법 건축물만 철거하면 즉시 이장으로 임명하겠다”는 입장이다.

면장 면담을 했던 한 주민은 “자꾸 면장이 철거를 요구해 우리가 면장에게 직접 ‘철거만 하면 이장으로 임명하겠느냐’고 묻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말했다”면서 “행정명령 불이행은 핑계일 뿐 정작 이유는 ㅇ씨가 여자이기 때문에 임명을 미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장 임명의 지연으로 아파트 보상(상자기사 참조)과 관련한 업무에 차질을 빚게 되어 주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다른 사람을 이장으로 뽑으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ㅇ씨가 능력있고 신뢰할 만한 사람일 뿐 아니라 정당한 절차를 밟아 주민들이 이장으로 선출했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임명하지 않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ㅇ씨가 임명될 때까지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행정명령 불이행은 핑계, 여자라 미루는 거다”

마을 주민은 “어떤 때는 ‘원칙’을 어떤 때는 ‘주민정서’를 이유로 이장 임명을 미루는 면사무소 측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한 주민은 “면에서는 원칙만 따지는데, 행정명령을 받은 사람은 ㅇ씨의 남편이지 ㅇ씨가 아닌데도 ‘주민정서’를 들먹이며 ㅇ씨를 임명하지 않는다. 우리가 뽑은 사람을 우리를 핑계삼아 임명하지 않는 것이다. 또 그 동안은 가만히 두었다가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은 무슨 의도인지 의심스럽다”고 불만을 표했다.

다른 마을 주민도 “처음에는 지하로 들어가라고 해서 주민들이 반대하니까 이제는 그런 요구한 적 없다며 어디로든 옮기라는데, 옮길 데도 없거니와 면사무소 측이 얘기하는 곳은 현재 또다른 불법건축물이 들어와 있는 상태”라며 “보상처리와 관련해 이장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필요한 서류는 이장에게만 줄 수 있다며 주지 않고 이장 임명은 하지 않고 도대체 누구를 위한 면사무소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이장으로 선출된 ㅇ씨는 “이장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웃들 뿐 아니라 나 역시 집 문제가 걸려 있어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인데, 요즘 면사무소에 들어가 보면 내가 마치 이장을 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 취급을 한다. 장사하면서 애 키우느라 바쁜 내가 이장을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하고 반문한다.

더욱이 ㅇ씨는 그간 전 이장 ㅊ씨로부터 ‘아이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려왔다고 전한다. ㅊ씨의 계속되는 협박에 ㅇ씨의 남편은 쓰러진 적도 있고, ㅇ씨 역시 아이들 걱정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현재 ㅇ씨는 협박 내용을 녹취한 테이프를 증거로 ㅊ씨를 고소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동네 사람이라는 생각과 공무원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참고 있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것을 확인한 이상 주민들과 한마음으로 싸워서 반드시 이장을 하고야 말겠다.”

해당 관청이 원칙만 내세우며 주민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가운데 민관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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