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휘두르던 신모씨 살해사건 2차 공판

11일 포항지원 6호 법정에는 84살의 시어머니와 47살의 며느리가 나란히 섰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와 노모의 살인사건 2차 공판이 있던 이 날, 변호인의 반대심문 과정에서 드러난 가정폭력의 모습은 두 여성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박스나 빈 병을 주우러 다니셨습니까” “예” “아들은 어머니에게 늙은×은 죽어야 한다. 늙은× 때문에 내가 되는 일이 없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예” “그날 밤에도 아들이 술 먹고 들어와 며느리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까” “예” “며느리에게 칼을 주었습니까” “예”(변호사와 노모 김씨가 주고 받은 내용의 일부)

그들은 왜 거기에 서야만 했을까.

지난 해 10월 27일 포항에서 있던 신모씨 살해사건. 아내와 자녀들은 물론 친어머니에게까지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둘렸던 신모씨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고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의 이면에는 상습적이고 처절한 가정폭력이 있었다.

‘정당방위 인정’ 포항시민들 연대서명

군복무 아들·고3 딸 재판부에 탄원

성폭력 후 동거로 시작되었던 며느리 김씨의 21년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폭력에 억룩진 세월이었다. 전직 도살업자였던 신씨는 상습적으로 자녀들은 물론 노모에게도 욕설과 폭력을 휘둘러 왔다고 한다.

20여년 동안 가족들은 신씨의 폭력으로 극도의 긴장과 불안, 공포심 속에 살았고, 그 폭력을 참다 못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아들이자 남편 신씨를 살해한 것이다.

이에 포항여성회와 가정폭력피해상담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과 포항의 시민단체들은 ‘김00씨 구명운동을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하고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을 비롯해 재판부에 김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무죄 석방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은 “가정폭력으로 핍박과 학대 속에서 고된 삶을 살아온 김씨에 대해 피해자의 관점에서 정황을 참작하여 판결에 반영해야 한다.

가정폭력이 가정내의 문제로 치부되어 적절하면서 효과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고 방치되었을 때 이번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살인사건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며, 경찰에서는 가정폭력의 예방과 신속하고 효율적인 초동조치 및 대처를 위한 경찰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군복무 중인 김씨의 아들도 재판장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20년간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해온 어머니와 할머니의 치욕스러운 세월을 이젠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횡포 속에서 우리를 구하려고 그러신지도 모릅니다…”라고 썼다.

올해 고3인 딸도 “아버지 말을 조금이라도 거역하거나 부정하면 아버지 말이 옳다고 할 때까지 때리고 짓밟았습니다. 매일같이 맞고 머리 감을 때마다 한 움큼씩 머리가 빠져 한여름에도 머리가 시리다며 모자를 쓰고 다니시는 저의 어머니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이제는 아픈 기억을 떨쳐 버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라는 글을 판사에게 보내기도 했다.

성폭력·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김씨는 지금 가해자로 서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로 살아온 21년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지 김씨에 대한 선고가 주목된다.

경북 권은주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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