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성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했던 메리 데일리(Mary Daly)가 지난해 클레몬트에서 강연했다. 이번에는 백여 명의 청중을 동원했을 뿐이지만 그녀의 강의는 여전히 신화적이었다.

강연의 골자는 여성들이 자신들 안의 야생적인 힘을 발견하여 용기를 가지고 인종·성·경제적 계층·성애차별 등을 빚어내는 가부장사회의 폭력에 맞서서 싸우며 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미국 부시 정부의 아프간 보복공격에 대한 반대와 조소를 보냈다. 뿐만 아니라 현행 중동 국가의 이슬람이나 미국 기독교의 근본주의적 종교와 관련된 정치는 그 근본이 같은 것으로서 세계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또 9·11 사건 이래로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 정세에 대해서 큰 우려뿐 아니라 분노를 표현하였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여성탄압에 대해서 여성들이 함께 분노하고 연대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런 심각한 내용들을 데일리 자신의 고유한 유머를 섞어서 청중들을 자극하고, 꾸짖고, 웃게 했다.

그러나 이런 데일리의 목소리가 미국의 여성학계에서 배척받은 지도 벌써 10여 년이 넘는다. 제2의 여성주의 운동이 백인여성 주도로 시작된 가운데, 오드리 로드(Audre Lorde) 등으로 대표되는 흑인여성주의자들이 데일리를 비롯한 일군의 백인 여성운동가들이 인종차별적인 백인여성운동을 하고 있다고 공격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미국의 제3세계·유색인종·포스트모던·탈식민주의 여성주의 이론가들도 60∼70년대 미국을 흔들었던 백인여성주의가 식민자·억압자·백인·제1세계·중산층 여성들의 패권을 지속시키는 수단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어나는 유색인종 여성주의 이론들은 자신들이 비판하는 틀을 자신들의 이론 안에서 번복하고 있으며, 운동성을 거세하고 학계의 이론으로만 남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현재 미국학계를 지배하는 여성주의 이론은 모순과 자가당착으로 범벅이 되어 자매애적 연대가 결여된 여성 지식인들의 전유물로 나타나고 있다.

메리 데일리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세대가 바뀌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수년간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 데일리가 세계 어느 중산층 여성주의자들보다 더 서민적이며, 제반 가부장 사회적인 위계질서를 타파하는 자유인임을 보았다. 데일리는 실제로 근로자 계층의 아일랜드계 가정에서 자랐고, 근로자 계층의 여성주의를 위해서 투쟁한다. 물론 데일리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누명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까지도 데일리는 보스턴 칼리지에서 퇴직을 강요받는 사건으로 인해서 투쟁했다. 결국 여성학계에서 데일리는 백인여성들의 오류를 덮어쓰는 희생양이 된 것이다.

민중차원에서의 여성운동가들과 종교계의 여성주의자들은 인종과 문화를 넘어서 데일리를 평가한다. 클레몬트 신학교의 전 학장 마저리 수하키(Marjorie Suchocki) 교수는 “데일리가 없었다면 우리가 여기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차원의 여성운동가들은 물론 기독교 여성신학, 다양한 종교여성학, 여성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메리 데일리의 저술은 여전히 영감과 자극을 주면서, 범인종적·범문화적 여성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필자 자신이 데일리의 저술의 강력한 운동적 힘에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서, 데일리의 두 책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이대출판부)와 <교회와 제2의 성>(도서출판 여성신문사)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데일리의 사상을 한국여성들에게 알린 바 있다.

황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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