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김현주/천리안 여성학 동호회 부시삽

우리 인류는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영역에서 인간에 대한 차별을 일삼아 왔다. 빈부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인종차별, 장애인 차별, 여성차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나이차별 등 기득 세력의 입맛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차별이라는 폭력은 금방 힘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인권적 차원에서 차별에 눈뜬 소수의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느리긴 하지만 장애인 차별과 여성차별은 조금씩 줄고 있는데, 반대로 외모차별은 성형외과술의 발전과 더불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그동안 여성차별을 했던 기득 세력이 잘 써먹던 방법 중 하나는 개인의 무능력을 들춰내는 것이었다. 유리천정 위에는 성공한 몇몇 여성들을 본보기로 올려놓았고, 바라만 볼 수 있을 뿐 결코 다다를 수는 없는 그런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잘 봐봐. 이 여성들의 성공이 보이지? 이들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성공했지. 당신네(=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의 남성들보다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우리 사회가 성차별을 한 건 아니라니까!” 이런 장치는 차별을 개인적 차원으로 돌릴 수 있었던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외모차별을 자꾸만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도 유리천정과 같은 함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세력(주로 부와 권력을 쥔 기득 세력)에 의해 미의 기준은 정해지고, 미의 이데올로기를 좇는 주류 밖의 사람들은 성형수술을 통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승을 시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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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용성형 그 끝에는 유리천정이 기다리고, 미용성형으로는 이 차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애초부터 외모차별은 개인이 미용성형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성이 점유해 왔던 사회에 여성들은 조금씩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그러자 그들은 악의에 찬 농담과 성희롱을 일삼았고 여성노동자들끼리 대립하게 했다.

그 대립 중 하나가 외모차별이라는 장치이다. 지금은 일부 남성도 직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미용성형에 뛰어들고 있지만, 남성이 겪는 차별은 피부색, 눈과 입술의 모양, 팔다리의 두께, 나이까지 훨씬 까다로운 표준이 적용되는 여성과는 비교도 안된다.

미인만 긍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방송, 성형수술 후 많은 돈을 버는 연예인의 성공담! 이들은 대중에게 성형수술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덧붙여서 이득을 챙기려는 성형외과 의사들은 치료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하고 있다. 그들은 열등감과 불안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자기 만족과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하는 치료 행위를 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젊은 여성들을 끊임없는 미의 경쟁에 몰아 넣고 난 다음, 즉 병 주고 약 주고 실컷 약올리고 난 다음 주장하는 치료행위인 것이다. 외부의 시선에 따라 자신의 육체를 비판하게 하고, 자기 혐오감을 심어주고, 자신의 신체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내부에서 그들의 육체가 느끼는 바를 부정하게 해놓고 나서 뒤늦게 치료행위라고 하는 것이다.

미용 성형수술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성형수술만으로는 이 사회에 만연한 외모차별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지는 못한다. 첫째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미용성형의 선두주자와 방송국에서 부끄러움을 자각하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줘야만 한다. 그 다음 사회운동으로 여성들이 다시 자신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도록 교육해야 한다.

우리 젊은 여성들이 모델이라는 망령과 싸우게 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은 거울 앞에 나타나는 우리의 평범한 모습(키도 작고 배도 나오고 쌍꺼풀은 없으며 굵은 팔다리를 가진…)을 TV속의 모델과 비교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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