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립 어려운 노인지원 새 복지정책 마련

자립도에 따라 10만∼126만원까지 차등 지급

전문 자택 도우미 등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

프랑스는 2002년을 맞아 ‘역사적 진보’로 평가되는 노인 복지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올 1월 1일부터 만 60세 이상의 노인들 가운데 자립도가 낮은 사람들은 APA, 즉 ‘자립도의 개인차를 고려한 수당’이란 이름의 재정적 도움을 받게 된다.

이 같은 노인 복지 정책의 혁신은 인구 노령화 현상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프랑스의 경우 만 60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1.3%를 차지하고 있고 그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신체 및 정신 기능의 약화 및 퇴행으로 자립성을 잃기 때문에 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 타인의 도움 없이 몸 일으키기, 간단한 세안 및 목욕, 옷 갈아입기, 식사준비, 청소 등을 혼자서 하기 어려운 노인들이 많다. 게다가 경제적 빈곤은 노인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의 수가 약 320만 명에 이르고 그 중 절반 정도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을 받고 있다. 물론 1997년부터 13만9천명의 노인들은 ‘의존특별수당(PSD)’의 혜택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의존 정도가 낮은 노인들이나 평균 이상의 소득이 있는 노인들은 이 수당의 수혜자가 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파리 14구에서 혼자 살고 있는 87세의 이본느 할머니의 경우 재작년 대퇴골 경부 골절 수술을 받은 이래 거동이 불편한 상태이다. 남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도 제대로 꾸려 나갈 수가 없고 당연히 외출도 불가능하다. 소파에 앉아 지내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매달 평균소득 이상의 연금을 받고 있기에 ‘의존특별수당’ 수혜자가 될 수 없었다.

사실 이 연금은 그녀 대신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 가사노동 보조자에게 지불해야 할 월급과 집 월세로 거의 모두 지출된다. 그녀의 수중에는 먹거리와 일용품 구매에 쓸 약간의 돈이 남을 따름이다. 결국 그녀에게는 생존하는 것 이외의 다른 삶의 내용은 없다. 곁에서 함께 이야기 할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를 찾아 바깥 세상을 구경하러 외출할 수도 없다.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인 소파에서 ‘나무토막’으로 변해 버릴까 두려워하면서 죽기 전까지 외부로부터 격리된 감옥생활만이 선고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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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는 올해부터 노인들이 심리적,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인복지 정책을 실시하기로 발표했다. 사진은 국내 한 양로원의 모습.

<사진·민원기 기자>

그런데 APA의 시행은 이본느 할머니와 같은 노인들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그녀도 APA의 수혜자가 되어 공원산책을 할 수도 있겠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찾을 수도 있겠다.

‘의존특별수당’을 대체하는 APA는 소득수준 및 자립상실의 정도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자립상실 정도는 의사 등의 전문가에 의해서 4등급으로 나뉘어져 평가된다. 평가에 따라 수당은 한 달에 600프랑(약 10만원)에서 7000프랑(약 126만원)의 범위 내에서 주어진다. 수혜자의 수도 대폭 늘어나 양로원, 병원 등에서 살고 있는 노인들 25만 명과 가정집에 살고 있는 노인들 55만 명을 합해서 약 80만 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수당의 목적은 자립성을 상실한 노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데 있다. 즉, 자택 내 도움, 기관 내의 임시 숙박, 교통비, 식사 운반비, 주택 개조비 등에 수당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APA의 시행은 새로운 고용창출의 효과를 낳게 되리라고 전망된다. 단순한 가사보조자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노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자택 도우미의 수요가 급증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자택 도우미는 현행 노인 보조 직종과 달리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급여도 많아져야 할 것이다. 이에 발맞춰 기존의 ‘주택 내 보조와 관련한 능력 증명서(Cafad)’는 ‘사회생활 보조’란 이름의 국가 학위로 대체될 전망이다.

‘고용과 연대부’ 장관인 엘리자베스 기구는 이번 APA의 시행과 관련한 예산부족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개혁된 노인수당이 의존적인 노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프랑스는 노인들의 가사노동, 식사, 몸단장을 돕는 데서 그치는 소극적인 노인 복지에서 노인들이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적극적인 노인 복지로의 이행을 시작한 듯하다.

(르몽드 2001년 12월 30일자 기사 참조)

황보신 통신원 프랑스, 몽펠리에 3대학 철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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