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수리산은 보배단지다. 나는 저조한 체력에 맞추어 산기슭에서만 조금 왔다 갔다 하지만 그래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그 중에도 내가 제일 사랑하는 자리는 작은 계곡 시냇가에 놓인 평상이다. 철마다 숲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온통 홀려, “이렇게 아름다운 도립공원에 평상까지 놓아 주다니 고맙기도 하지. 세금을 착실히 내자”하고 다짐도 한다.

하루는 오후 늦게 혼자 앉아 한가로이 즐기고 있는데,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산에서 내려오더니 같이 좀 앉아도 되냐기에 그러라 했다. 뭐 내가 전세 낸 것도 아니니까. 잠시 앉아있던 이 아저씨가 ”저... 인상이 워낙 좋으셔서 그런데요, 제가 고민 얘기 좀 해도 될까요? 상담 좀 해주세요”하고 말을 건다. 어라, 내 이마에 심리학자라고 써있나 하고 일순 의심했다. 머리가 허연 초로의 할머니라 그랬겠지. 내가 뭐 도움이 되겠냐고 했으나, 벌써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고민의 내용은 착실한 가장으로 잘 살아왔는데 최근 등산 다니다 알게 된 여성과 몇 번 만나다 보니 자꾸 보고 싶어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자세한 사정도 모르면서 순식간에 조강지처의 입장에 서게 된다. 어쨌든 결혼은 약속이니까. 약속을 저버리고 신의를 깨고도 이를 심각한 도덕적 수치로 여기지 않는 것은 가부장제 문화 탓이다. 남자가 바람 좀 피우는 게 무슨 큰 흠이냐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낯선 사람에게 고민이라고 쉽게 털어놓을 수도 있다. 제가 요새 사기를 쳤는데요 하고 털어놓는 사람은 없지 않나.

마음 같아선 정신 차리고 바람피우는 짓 당장 그만두라고 야단치고 싶었다. 그러나 상담은 도덕적 훈계가 아닐뿐더러 이 사람에게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할 것이므로 방침을 바꾸었다. 새로 만난 여자분이 너무 좋아서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그 사람과 한 번 살아보고 싶으냐, 부인과 자녀들이 아는 것은 시간문제다, 배신당했다고 원망할 텐데 가정이 무너져도 괜찮으냐, 그래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간절하다면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 여자분과 살아보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낭패를 보기 전에 하루빨리 그 사람에게 통보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도덕적 반성보다는 결과의 손익계산으로 유도했다고 할까.

심각한 얼굴로 듣던 이 아저씨는 구십도로 인사를 하며 “아이구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제가 큰일 날뻔 했습니다”라고 했다. 불친절하게 대하기 곤란해 상담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오래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없어서, 잘 해결하시기 바란다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황현산 선생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들의 행동거지는 풍속의 가치를 얻는다”면서, 철저한 반성이 없는 남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셨다. “풍속이 만들어주고 승인해주는 남자들의 습관은 자주 남자들의 생리나 본성과 혼동되기 때문에 반성을 해도 그 반성의 효과는 없다. 생리와 본성을 어떻게 철저하게 반성할 수 있겠는가. (중략) ‘남자는 이렇게 생겨먹었다’로 표현되는 비관주의는 이 실천해야 할 쇄신 앞에서의 망설임이라고 말해야 하겠다.”

나는 상담심리학 전공이 아니므로 이건 엄격히 말하면 돌팔이 상담이었다. 그런들 어떠랴, 상담해달래서 해줬고 돈 받지 않았는데. 저녁 먹으면서 “여보, 나 오늘 돌팔이 상담했어”하고 그 이야기를 했다. 다 들은 남편이 “우와, 상담 도사 나셨네, 그 평상에 돗자리 깔아”라고 한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반성했을까, 행동거지를 쇄신했을까? 돌팔이 상담자는 결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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