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만남]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노희경의 드라마
[여성신문-만남]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노희경의 드라마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8.10.23 15:33
  • 수정 2018-11-01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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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2018 올해의 성평등문화인상 노희경 작가

나와 너, 우리의 삶 화면에 담아내는 작가

“평등은 당연한 이야기”

불합리한 제도 개선 위해 연대할 용의 있어

다음 작품은 ‘덜 아픈’ 밝은 드라마 쓰고파

 

 

 

인생은 드라마다. 드라마처럼 수많은 우연과 인연과 사연이 뒤섞여 하루, 일주일, 일년을 만든다. 중학생도, 회사원과 편의점 주인도, 그리고 전업주부의 인생도 모두 드라마다. 그러나 정작 TV드라마에선 평범한 소시민의 인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실장님’이라는 이름으로 재벌이 등장하거나 의사, 변호사 같은 화려한 전문직 종사자, 강력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드라마 속 이야기 주어가 된다. 그런데 ‘노희경표 드라마’는 다르다. 지구대 경찰의 ‘실상’을 담은 ‘라이브’(2018년)와 노년의 삶과 ‘여성 연대의 서사’를 그린 ‘디어 마이 프렌즈’(2017년), 현실 가족의 일상을 담은 듯 잔잔하게 써내려간 ‘꽃보다 아름다워’(2004년) 등 그의 작품 주인공은 나와 내 가족, 또는 우리 이웃이다. “이 세상은 영웅 한 명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이 이뤄낸 것”이라는 노희경 작가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자극적인 소재나 막장 전개 없이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1995년 단막극으로 방송가에 데뷔해 23년 간 서민의 삶 이야기를 써내려간 노 작가는 지난 12일 여성문화네트워크 주최·여성신문사 주관 2018년 ‘올해의 성평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소외계층,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감 있는 이야기와 사회 이면을 보여주고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는 게 성평등문화상 심사위원회의 평가다. 하지만 노 작가는 이 같은 평가가 오히려 “어색하다”. “이런 상이 없어지길 바란다.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그의 수상 소감이 이런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마주앉은 노 작가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평등은 법으로도 규정된 당연한 이야기”라며 “성평등에 기여했다며 특별하게 상을 주는 것이 어색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사회적 약자가 드라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이듯, 작품 속에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노희경표 드라마’는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특히 다른 드라마와 달리 사회적 약자가 많이 등장한다는 면에서요.

“작품을 쓰면서 특별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거나, 굳이 약자를 찾아서 써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예요. 제게는 (그들이) 안보이는게 오히려 이상해요. 제 형제 중에도 노동자가 있고, 장애인도 있고, 모두 서민층이거든요. 제게는 그들의 얘기가 일상적인 것인 것죠. 문제의식을 갖고 시작한 게 아니라 왜 이들이 공존하고 있는데 드라마에선 쓰지 않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자꾸 이야기 속에서 소외되는 것은 저로서는 불편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24년간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쓴다는) 말을 듣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이 많지 않다는 건데, 사회적으로 봤을 땐 되게 기형적이죠.”

-드라마에서까지 현실을 마주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판탄지 드라마를 찾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판타지를 쓰는 친구들의 공로도 인정해야죠. 답답한 현실 속에서 드라마를 통해 편하게 웃을 수 있고 기댈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그런데 다양성이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인 것 같아요. ‘빠담빠담’에선 판타지를 시도하기도 했어요. 저는 시대의 유행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야기의 그릇, 알맹이는 바뀌지 않아야 하는 거죠.”

-지난 5월 종영한 tvN 드라마 ‘라이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경찰 지구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첫 회부터 여성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이 겪는 성차별을 환기합니다. 시민을 지키는 경찰도 취업난과 노동 시장 성차별을 겪는 청년이라는 점이 잘 드러났던 것 같아요.

“경찰 지구대 이야기를 다루기로 결정하면서 캐릭터 중에 경찰 초년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성 경찰에 대한 편견을 그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1년 동안 취재를 하다보니 경찰도 하나의 직장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취준생 이야기와 성 담론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거죠. 한 개인을 따라가며 관찰하면 그게 시대 이야기 일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들도 사람이다

-‘라이브’에선 노동시장 성차별을 그리고, ‘꽃보다 아름다워’에선 가부장제의 모순과 호주제 문제를 언급하고 ‘디어 마이 프렌즈’에선 여성들의 연대를 다루는 등 작품 전반에 여성주의 관점을 많이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인터넷 오픈 백과사전엔 “(노희경 작가가)2018 tvN 라이브에서 페미니스트임을 인증했다”라고 적어 놓았더라고요(하하).

“페미니스트는 여성주의 전에 인본주의라는 말에 동의해요. 아직까지 여성은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약자잖아요. 제도 속 불합리한 문제는 개선해야 하고, 그를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연대할 용의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긋나는 것들, 불합리하고 관행적으로 행했던 것들을 바뀌어야 해요. 시대에 맞지 않으면 의의를 제기하고 합당하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에 대해서는 조금 관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고, 공동체와 법적인 문제거든요.”

-‘라이브’를 집필하게 된 계기도 촛불집회 였다고요.

“촛불집회에 나갔을 때 제 앞에 선 경찰의 눈을 살펴보게 됐어요. 내 조카보다 어리고 눈을 어디다 맞출 지도 모르는 경찰들이었어요. 집회를 막지도 못하고 참여하지도 못하는 불안한 모습을요. 그때 이제 갓 새내기 경찰이 된 이들이 현장에 자발적으로 나온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들을 통을 보지 말고 세밀하게 보고 싶다고 생각을 한 거죠. 삶에 방점을 찍고. 제대로 보자고 취재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면을 알아가는 재미와 함께 이런 사람들이 경찰을 하는 구나 하는 안심도 되고, 걱정과 우려도 됐어요.”

-어떤 걱정이었나요?

“저는 보려고 하는 사람인데, 어떤 편견에 휩싸이면 보고 싶은게 보이지 않거든요. 한쪽에선 한쪽 편을 든다고 생각할 수 있고요. 실제로 권력을 남용하는 일부 몰지각한 경찰도 분명히 있고요. 이 작품을 우산이나 우비로 쓸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과 우려가 있죠. 그걸 과연 걸러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조심 했던 것 같아요. 이제껏 경찰이 해온 일들이 마냥 국민의 기대치에 맞았던 것 같진 않아요. 분명한 건 그 책임은 수뇌부에 물을 일이지, 현장에 있는 경위 정도의 하급 공무원한테 묻는 건 아니라는 거죠. 제가 봤을 땐 경찰 조직의 문제는 제도적 문제가 더 컸어요. 경찰 조직의 문제를 경위 이하의 하급 경찰에게 물을 수 없다는 가치관이 섰고, 욕을 먹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결심한 거죠.”

-최근 배우 한지민씨가 인터뷰에서 작가님을 멘토라고 밝혔고, 조인성씨도 작가님 만나고 성장했다고 말했는데 보셨나요? 많은 배우들이 노희경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작가님도 배우들에게 영향을 받나요.

“한지민씨는 오래 전부터 봉사활동을 함께 해왔고, 조인성씨도 기회가 있으면 참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얼마 전 법륜스님이 진행하시는 동북아 역사기행에 함께 다녀왔어요. 배종옥씨도 함께요. 저도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향을 받을 때가 많아요. 그 친구들 이야기 들으면서 놀랄 때가 있어요. 저는 그렇게 준비도 안됐고 자각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도 마음의 키가 일센티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요. 드라마를 통해 편견을 깨왔지만 아직 편견이 쌓여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이 순간 옳다고 한 것이 내일 아침 편견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늘 편견을 깨려고 노력해요.”

‘행복할 때까지만 쓰자’

-드라마 집필이 끝난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글을 쓰기 시작하면 사람도 안만나고 감옥생활처럼 해요. 지금은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묻는 시간이에요. 주위에 내가 뭘 고쳤으면 좋겠는지, 어떤 작품을 썼으면 좋은지 물어보거든요. 그럼 ‘조금 더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듣고 ‘스릴러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도 있어요. 그럼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정하기 보단 ‘스릴러를 노희경식으로 쓴다면 어떨까’하고 생각해봐요. 지금은 좋은 영화도 추천 받아 보고, 지인들에게 요즘 어떤 걱정을 하는지, 뭐가 재밌는지 듣기도 하고요. 알려주세요. 제가 뭘 쓰면 좋을지.”

-링거를 맞을 정도로 힘들게 작업하신다고요.

“7~8년 전부터는 링거를 맞지않고 있어요. 제가 조금 더 준비하고 몸을 살폈다면 링거를 맞을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제가 위태하면 팀은 더 불안해하니까요. 피해주면 안되잖아요. 옛날보다 준비 기간을 더 가져요. 예전엔 8개월 정도였으면, 지금은 12개월 정도 준비해요. 요가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요. 드라마를 쓰는 과정이 힘들지만 괴롭진 않아요. 등산을 할 때 힘은 들지만 정상에 오르면 쾌감을 느끼잖아요. 집필을 시작하고 한 15~16년 정도까진 괴로운 적도 있어요. 그때 제 스스로와 약속을 했어요. 글 쓰는 일이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두겠다고요. 이젠 ‘네가 행복할 때까지만 써’라고 제 자신과 약속하고 힘들면 조절해요.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하죠. 글이 나를 어떻게 할 순 없다는 걸 알아요. ‘내 인생은 내 것이지, 글 네 것이 아니란다’ 라고요(하하).”

-저는 ‘그들이 사는 세상’같은 직업과 멜로가 섞인 드라마를 좋아하고, ‘거짓말’과 ‘바보같은 사랑’을 최고의 작품이라고 꼽는 분도 있어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으세요?

“‘바보같은 사랑’은 초기 10년 가장 작품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이고, 최근엔 ‘디어 마이 프렌즈’가 완성도가 높았어요. ‘거짓말’은 젊은 날의 열정. 앞으로는 조금 더 신나고 조금 더 발랄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드라마를 보면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보는 사람이 덜 아프면 좋겠어요. 그럴려면 내가 좀 더 밝아져야 겠죠. 제가 행복하기 위해 최대한 연구하고 배우고 있으니까 아마 말년에 내 작품이 가장 밝지 않을까 생각해요. 마지막 작품이 가장 밝고 환한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요.”

-‘노희경 드라마’는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아요.

“그래서 무엇이 어려운지 많이 들어요. 그 어렵다는 부분을 깊이는 있으나 쉽게 얘기해주는 것도 작가의 역할이잖아요. 저에 대한 지적을 심각하게 듣고, 그 지적이 왜 나왔는지 분석하고 다시 듣지 않으려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실제 글로 실현하고. 공부할 거리가 많아요. 지적하는 사람이 진짜 많거든요. 처음 대본이 나오면 스태프들에게 무기명으로 절 지적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요. 나는 내가 잘 안보이거든요. 혼자 공부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그 지적이 아플 때도 있어요. 아프지만 분명한 것은 그걸 듣지 않으면 도태되고, 정체되고 정지된다는 것이에요. 공부하지 않고 정체되고 남의 지적에 냉담하던 작가들이 무너진 경우도 많이 봤어요. 이제는 아파도 두려워하지 않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그 효과를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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