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느니만 못한 통계청 무급 가사노동 가치

현재 남녀의 식사 준비 누가 더 생산적일까

마음·신경 무급 가사노동, ‘시간’서 누락

노동의 시간당 가치까지 남녀 차등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 더 깎아내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GDP는 시장 경제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화폐 가치로 표현할 뿐 우리의 삶의 질과 행복 수준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UN은 이러한 GDP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적인 가계생산 위성계정 작성을 권고하고 있고 통계청도 드디어 가계생산 위성계정을 발표했다. 식사준비, 빨래하기, 청소하기, 쇼핑하기, 자녀돌보기 등을 시장에서 생산되는 것과 다름없는 생산 활동으로 인정하고, 그에 투입되는 가사노동 시간을 화폐가치로 평가하는 작업이다. 통계청은 2014년 가사노동가치가 GDP 대비 24.3%이고, 남성과 여성은 각각 24.5%, 여자는 75.5%에 해당하는 만큼 기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우선 개인이 어떤 활동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쓰는지 조사한 생활시간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가사노동 시간을 계산한다. 가장 어렵고 애매한 부분은, 유급 노동은 ‘임금’이라는 가치 측정 도구가 있지만 무급 가사노동에는 그러한 임금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결정된 임금을 가사노동 가치 평가에 활용한다. ‘누구’의 ‘어떤’ 임금을 쓸 것인가는 가치 측정자의 주관적 판단에 달려 있지만, 합리적 설득력이 있어야 모든 사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감사에 따르면 통계청은 가사노동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남녀에게 서로 다른 시급을 적용했다. 남성의 시간에는 시급 1만3564원, 여성의 시간에는 시급 9864원을 적용했다. 하루 동안의 무급 가사노동 시간은 여성 214분, 남성 53분이고, 여기에 여성과 남성의 시급을 각각 곱해 주어 연간 단위로 계산하면, 연간 1인당 무급 가사노동가치는 남성 3469천원, 여성 1만769천원으로 평가되었다. 무급 가사노동 시간에서 여성은 남성의 4.03배의 시간을 썼지만,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 가치는 남성의 3.1배로 감소한다. 가사노동 시간을 화폐가치로 환산하니, 전체 가계생산에서 여성의 생산적 기여가 줄어드는 것처럼 나타난다.

통계청은 무급 가사노동 가치 평가를 제대로 했는가? 전문가들은 무급 가사노동 가치를 평가할 때 대체임금법과 기회비용법을 제안한다. 대체임금법은 ‘내가 무급 가사노동을 직접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시킨다면 얼마가 필요할까’라는 전제 위에 가사노동의 가치를 평가한다. 반면 기회비용법은 ‘내가 무급 가사노동을 하지 않고 취업을 했더라면 얼마를 벌었을까’라는 전제 위에 가사노동의 가치를 평가한다. GDP를 보완하는 가계생산 위성계정의 의의는, 가정에서 아이를 무급으로 돌보는 엄마의 활동이 없었더라면 보육교사에게 임금을 주고 아이를 돌보도록 했을 것이라는, 즉 엄마의 활동은 보육교사의 활동만큼이나 생산적이라는 생각을 화폐가치로 표현하려는 데 있으므로 대체임금법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대체임금법의 근본적인 문제는, 가사노동 활동과 유사한 직종 종사자의 임금을 적용할 때 가사 및 돌봄 관련 일에 대한 문화적 관념과 시장 차별 기제의 결과 저평가된 임금을 그대로 적용하여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체임금법의 근본적인 한계에 더해 통계청은 대체임금법의 전제를 지나치게 ‘정밀하게’ 해석해서 적용했다. 통계청의 논리에 따르면, 남성은 자신의 가사노동을 대체할 때는 항상 남성 노동자로 대체하고 여성이 자신의 가사노동을 대체할 때는 항상 여성 노동자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 평가에 관한 어떠한 연구도 남녀의 임금을 구분하여 대체 임금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1시간의 식사준비 노동을 한다고 할 때, 현재 남녀의 식사준비 기술과 지식을 고려하면 누가 더 생산적일까. 정작 높은 가사노동시간의 가치를 부여받아야 하는 것은 여성일지 모른다. 구체적인 활동과 결부되지 않는 마음과 신경을 쓰는 많은 무급 가사노동은 ‘시간’에서 누락되어 이미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실제보다 적게 집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노동의 시간당 가치까지 남녀 차등을 두어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시간의 가치를 더욱 깎아내렸다. 없느니만 못한 가계생산 위성계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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