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드랙, 이분법적 젠더의 전형화가 아니라 이를 해체하는 퍼포먼스
[특별기고] 드랙, 이분법적 젠더의 전형화가 아니라 이를 해체하는 퍼포먼스
  •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 승인 2018.10.23 14:15
  • 수정 2018-10-25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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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 하일’을 다녀오다]

사파이어 레인
사파이어 레인

 

드랙(Drag)은 최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꽤나 논쟁적인 이슈였다. 한쪽에서는 크로스드레서를 ‘젠신병자(젠더+정신병자)’로 조롱하기도 했다. 드랙킹 퍼포먼스가 통일적이고 전형적인, 나아가 여성혐오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모습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드랙을 오히려 저항과 비판의 패러디로 보았다. 드랙킹은 분명하고 통일적이며 일관적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여성’이 규제적 허구일 뿐임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주장이 맞는 것일까?

논쟁이 될 때면 두 입장은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설전을 펼치곤 한다. 그러나 과연 그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나는 2018년 10월 9일 홍대 명월관에서 열린 ‘제 1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 하일’을 보면서 우리가 잘못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드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 사실이 아니라 드랙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토대로 퍼포먼스의 방향을 잡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아장맨이 기획한 이번 드래킹 콘테스트는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이 공연은 드랙이 어떤 것이다 혹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가 아니라 드랙이 어떤 것일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여 펼쳤다는 것이다. 특히 아장맨은 이번 콘테스트에서 드랙퀸이 아니라 드랙킹이 갖고 있는 특수한 조건과 가능성에 주목한다.

 

 

드랙킹 아장맨과 금개
드랙킹 아장맨과 금개

 

아장맨에 따르면 우선 이번 기획은 드랙 퀸에 비해 가시화되어 있지 않았던 드랙킹을 가시화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아장맨은 드랙킹에게만 강요되었던 한 가지 규칙을 허물어뜨린다. 가령 이태원에서 흔히 수행되는 공연에서와 달리 이번 콘테스트에서는 드랙킹의 가슴 노출을 금지시키지 않았다. 사회자로 등장한 아장맨과 금개는 경연을 벌이는 드랙킹의 안전을 위해 공연 중인 퍼포머의 터치 금지, 성희롱 금지, 불법 촬영 금지, 성추행 금지, 기타 모욕적인 발언 절대 금지 등의 규칙을 지켜줄 것을 참가자들에게 분명히 했다. 이 모든 규칙은 남장을 하는 존재가 여성의 몸을 갖고 있음을 은폐하지 않는 방식이며, 여성들은 남장을 하고 있을 때조차 불편한 상황에 봉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이 규칙에 대응하는 관객과 경연자들의 방식 또한 독창적이었다. 접촉을 피하기 위해 관객은 종이비행기를 접어 팁을 날리기도 했고, 경연자는 관객이 주는 팁을 입으로 받아 처리하는 등 재치있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로미오 슈가, 왕자, 비제비제&자키자키, 범벅, 미친 과학자 로슈, 키스, 존 존슨에 이르기까지 콘테스트 참여자들은 전형화된 남성성을 연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성에게 존재하는 남성성,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남성성, 비주류 남성성 등을 연기했다. 퍼포머의 콘셉트와 그 의도를 살펴보면, 가령 첫 번째 참가자인 로미오는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 속 사랑스러운 히어로는 실재 남자들에게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신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네 번째 참가자 범벅은 남성적인 것으로 이름 붙여진 것을 신체적으로 여성인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로슈는 가부장적 남성의 모습은 전형적이며 통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성성의 수행이 결코 단일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따라서 로슈는 기존의 지배적 남성성에서 벗어나 비주류 남성을 연기하고자 한다. 이는 모두 남성적인 것을 전형화하는 드랙킹이 아니라 남성을 연기하면서도 동시에 남성적인 것을 파괴하는 드랙킹(범벅) 공연, 정체성으로서의 남성이 아닌 표현과 행위로서의 남성성(키스)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도들이었다.

 

 

존존슨
존존슨

 

드랙킹이 결코 남성성을 전형화하거나 강화시키는 퍼모먼스가 아님은 게스트 퍼포머 사파이어 레인과 아장맨에게서 최고조로 나타났다. 사파이어 레인의 퍼포먼스는 여성의 옷을 입을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을 표현했고, 아장맨의 천재 학자 퍼포먼스는 전형적이지 않은 비주류 남성의 남성성을 제안하여 보여준다. 따라서 이 공연에서 드랙은 젠더를 모방하지만 남성성이 유일한 어떤 정체성이 아님이 드러날 수 있게 되며, 그러한 다양한 남성성에 대한 욕망이 신체적으로 여성인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를 통해 우리는 젠더가 우연적인 것이며, 모방적인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나는 드랙 퍼포먼스가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어떤 의도로, 어떤 태도로 드랙 퍼포먼스를 강구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만약 이렇게 남성성의 우연성과 다양성 그리고 모방성을 드러내는 공연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드랙 퍼포먼스를 통해 두 개의 젠더가 아니라 다양한 젠더의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버틀러가 『젠더 트러블』에서 인용하고 있는 뉴턴(Esther Newton)의 문구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드래그는 말한다(뉴턴의 흥미로운 연극론). ‘나의 ‘외적’ 용모는 여성적이지만 나의 ‘내적’ 본질(몸)은 남성적이다.‘ 동시에 그것은 역전된 의미를 상징한다. ’나의 ‘외적’ 용모(나의 몸, 나의 젠더)는 남성적이지만 나의 ‘내적 본질(나 자신)은 여성적이다.”(『젠더 트러블』, 342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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