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포럼 – 공부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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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종: 스스로 답을 찾아갈 용기를 준 사람  

독서에 매달려 있던 어느 날 어떤 분의 질문을 받았다. “권박사님 인생의 텍스트는 무엇인가요?” 텍스트?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고 머리 속이 하얘졌다. 좋아하는 책 서너 가지를 간신히 떠올렸지만 과연 내 인생의 텍스트? 아니었다. 뭔가 살아가면서 나침반이 필요할 때 꺼내 보는 책이어야 나만의 인생 텍스트라고 할 텐데, 단 한 권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책이 없었다. 갑자기 미아가 된 것 같았다.

세종과의 만남은 내가 스스로 찾아서 된 것은 아니었다. 평소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강의 중에 세종을 사례로 많이 들어 주신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세종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 구글링을 하고 서점을 헤매어 <세종이라면>이라는 책을 찾아냈다. 단숨에 줄치고 메모하며 읽었다. 그 책은 결국 나를 <세종실록> 강독회까지 찾아가게 만들었다.

 

© 미다스북스. 도서 ‘세종이라면
© 미다스북스. 도서 ‘세종이라면

<세종실록>을 처음 맛보았을 때, 학교교육에서의 역사공부와 완전히 반대의 느낌이었다. 학교에서의 역사 공부는 마치 공장제 가공품 같은 것이었다. 시대는 사건과 사고로, 사람은 업적과 과실로 간추려지고 정리되어 있었고, 학생인 나는 그것을 암기하고 정답을 찾아야 했다.  

<세종실록> 읽기는 그 반대였다. 낯선 용어에 처음 만나는 인물, 온갖 분야별 사안과 사건들… 매일 각본 없이 터져 나오는 현실을 “날 것” 그대로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등장인물들이 현장에서 자신의 입장에서 어떻게 현실을 보고 행동하는지를 그 사람의 말과 행적을 통해 직접 알아 차려야 했다. 남이 정리해 주지 않았다. 요즘 우리 삶과 겹치는 장면들과 어록들이 얼마나 많은 지 내 스스로 무릎을 치게 되었다. 남이 요 대목에서 무릎을 쳐야 한다고 알려 주지 않았다. 훌륭한 인물이 많은 만큼 형편없는 인물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남이 누가 훌륭한 사람인지 정리해 주지 않았다. 즉 거르지 않은 ‘역사 데이터’를 보면서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키워졌다.

쉬운 읽기는 아니었지만 나를 존중하는 읽기였다. 남이 찾아 놓은 답을 수용하는 읽기가 아닌, 스스로 답을 발견해야 하는 읽기였기 때문이다. 문해력, 사고력, 상상력, 창의력 같은 고등역량 훈련에 최적이었다.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이런 식으로 역사를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다음 세대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식으로 공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세종은 세밀한 실록을 만들어 남겼을까?  

 

저작권 무관
저작권 무관

실록에는 세종이 역사를 중시하는 대목이 정말 많이 나온다. 공직자들이 시험대비용 경전 공부에만 관심을 두어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에나 빠진다며 한심해 하는 장면, 엄청난 분량의 역사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신하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장면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때도 왕과 신하들 모두 몹시 바쁜 일정에 고되게 일했다!), 사관들이 실록의 원재료인 사초를 최대한 상세하게 작성하도록 지시하는 장면,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역사 속 유사 사례를 섭렵해서 연구한 다음 대책을 세우는 장면, 역사 속 사례를 들어 과거시험 문제를 내는 장면 등등.

역사를 중시한 리더는 많다. 그러나 세종은 늘 “나도 잘 모를 수 있다”, “내가 놓친 게 있을지 모른다”고 전제했다. 그럴 때 그는 역사를 세밀히 다시 살피면서 현실 문제의 해법을 찾아갔다. 그런 세종이 바로 실록이라는 세밀한 역사기록을 남기도록 한 것이다. 아마 후손들이 세종 시대의 역사를 보고, 현재와 미래의 해법을 찾아가길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부란, 내가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힘을 갖기 위해 하는 것”이다. 세종은 역사와 토론을 통해 자신이 답을 찾아가는 힘을 찾았다. 나 역시 그의 기록을 만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자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세종실록>은 내가 인생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텍스트가 되었다.  

권혜진. 프리미엄 에듀·컬처 콘텐츠 기획사 세종이노베이션 대표. 리더십, 문화, 기초학문 분야 고급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으며 실록학교, 세종의 식탁, 품격경영아카데미, 이동건게임연구소 등을 육성 중이다. contact@withsej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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