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며느리’ 선호빈 감독 “영화 계기로 아버지에 맞설 용기 냈다”
‘B급 며느리’ 선호빈 감독 “영화 계기로 아버지에 맞설 용기 냈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10.19 05:38
  • 수정 2018-10-25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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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올해의 성평등문화상’ 중 올해의 성평등문화콘텐츠상을 수상한 영화 B급 며느리의 선호빈 감독.
‘2018 올해의 성평등문화상’ 중 올해의 성평등문화콘텐츠상을 수상한 영화 'B급 며느리'의 선호빈 감독.

 

[인터뷰] 2018 성평등문화 수상작

다큐 영화 ‘B급 며느리’ 선호빈 감독

“페미니즘 관점으로 만든 영화 아니지만

변화 계기 된 작품…보수적 아버지 대면하게 돼”

고부갈등이 ‘여자들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픈 영화 대사가 있다. “이게 나와 시어머니 사이의 일 같지만, 그 집에서 손발 멀쩡히 움직이는 사람이 넷인데 나랑 어머니 둘이서 ‘니가 했네, 내가 했네’ 싸우고 있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이거든.”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의 한 대목이다. 이 며느리의 ‘사이다 발언’에 맞장구치지 않는 여성이 있을까. 

영화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중간에서 안절부절 못할 뿐 아무 생산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 남편이자 아들의 초라한 모습도 빠뜨리지 않는다. 개봉 직후부터 가부장제, 독박육아, 독박가사, 여성혐오 등 페미니즘 논쟁에 불을 붙인 화제작이었다. 최근 (사)여성·문화네트워크(대표 박혜란) 주최, (주)여성신문사(사장 김효선) 주관, 문체부가 후원하는 2018 ‘올해의 성평등문화콘텐츠상’을 받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문제로만 치부돼 온 고부갈등을 남편이자 아들인 ‘남성’의 시선으로 보여줘, 여성만이 아닌 가족 모두가 공감하고 해결할 문제로 공론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게 이유였다.

선호빈 감독은 “솔직히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B급 며느리’는 특별히 여성주의적 의식을 갖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어요. 말하자면 ‘성장영화’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죠.” 자신을 포장하려 들지조차 않았다. “저는 평소 여성 동료들로부터 ‘마초’라고 놀림받는 평범한 한국 남자예요. 영화 공개 후 여성 독립영화감독 동료들, 평론가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어요. ‘야, 니가 문제의 근원이야!’라고. 그런데 영화가 그런 제 뜻과 달리 (페미니즘적으로) 해석되는 걸 보면서 ‘지금은 그런 시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가 제 커리어의 새로운 지표가 될 것 같은데, 제가 어디 가서 말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솔직히 무섭긴 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B급 며느리’는 선 감독이 오랫동안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으나, 갈등이 싫어 외면해온 보수적·억압적 집안 질서도 들춰 보였다. 영화를 만들면서 그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아버지와의 갈등을 회피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저희 부자는 솔직히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아요. 그래도 저는 (아버지가) 싫어도 대충 맞춰 드리고, 갈등을 회피하면서 사는 사람이었어요. 일종의 패배주의였죠. 그런데 아내를 보며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바뀌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래서 선 감독은 이번 추석 연휴 때 아내는 두고 아들과 단둘이 부모님 댁을 찾았다. 언짢아하는 부모님 앞에서도 그는 “할 말”을 했다. “아버지가 ‘왜 며느리는 안 오냐. 이번 제사 때는 와야 한다’라고 하시기에, 제가 ‘그냥 우리 선씨끼리만 합시다’라고 일축했어요.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시며 ‘저 자식 봐라, 묫자리를 잘못 썼네’라고 하셨죠. 어쨌든 제가 이런 갈등을 회피하지 않게 된 건 분명한 변화죠.”

그는 “어머니도 많이 변하셨다. 거절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셨다”고 했다. “예전에는 갑자기 저희 집에 찾아오겠다고 하시길래 거절하면, ‘그런 게 어딨냐, 내가 아무 때나 내 손자 못 보는 게 말이 돼?’라며 분노하셨어요. 그런 분이 ‘며느리한테는 안 되는구나’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되신 것 같아요. 긍정적 변화라고 생각해요.”

“아버지 세대를 극복할 열쇠는

인간 존중하는 건강한 관계 맺기”

선 감독은 요즘 ‘건강한 관계 맺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제 아들이 성장할수록 민주적인 교육 방식은 무엇인지, 억압과 교육의 경계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어요. 영화 현장에서 저와 함께 일하는 조감독, 스탭 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고민입니다. 모든 이상을 실천하긴 어렵겠죠. 그래도 다른 인간을 나와 동등한 인간으로 대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페미니즘도 그런 거잖아요.” 

그는 차기작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1966년부터 만 4년간 서울시장으로 재임한 김현옥을 조명하는 영화를 검토하고 있다. “그 당시 ‘시대정신’을 잘 보여주는 인물 같아요. 한국인들은 그 시기부터 ‘며느리로서’ ‘군인으로서’ ‘학생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교육받아왔죠. 하지만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교육받은 적은 없어요. 이제라도 계속 의심하고 질문하고 스스로 노력해야죠. 그게 저희 아버지 세대를 극복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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